Friday, August 19, 2005

프랑스 르와르 고성지대(Château de la Loire, France) - 4. 블루아 성(Château de Blois)

블루아 성(Château de Blois)
 
『블루아 성(Château de Blois)』은 프랑스 르와르 계곡의 르와르에셰르(Loir-et-Cher)주에 있는 왕궁이다. 「쉬농소 성(Château de Chenonceau)」에서 승용차로 1시간 거리에 있으며, 르와르(Loire)강의 북쪽 강변마을 고지대에 우뚝 솟아 있는 성()이다.

 
블루아(Blois) 마을 중앙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 『블루아 성(Château de Blois)』은 원래 블루아 백작(Counts of Blois)의 성()이었으나, 루이 12(Louis XII, 1462.6.27~1515.1.1)가 정권을 잡은 후부터 왕실이 소유하여 4세기 이상 프랑스의 여러 왕들의 거주지로 사용되었다.

 
13세기부터 17세기에 걸쳐 프랑스의 여러 왕들이 거주하며 자신의 취향에 따라 증축하였으며, 19세기에는 한 번의 개축이 있었다. 이처럼 건설기간이 길고 크고 작은 개축이 비교적 잦게 이루어진 까닭에 고딕(Gothic), 르네상스(Renaissance), 고대 그리스 양식 등 다양한 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있음을 볼 수 있는 성()이다. 위에서 보면 'ㄷ자형' 모습의 평면도를 갖고 있는 『블루아 성(Château de Blois)은 본관을 중심으로 양쪽의 건물은 루이 12세와 가스통 도를레앙(Gaston d'Orléans, 1608.4.24~1660.2.2)에 의해서 증축된 것이며 각 건물마다 건축주인 왕이나 왕자의 이름이 표시되어 있다.

 
 
 
정문에서 바라본 루이 12세의 궁전은 15세기에 건축되었고 이 건물과 오른쪽으로 연결된 맞배지붕(Gable roof; 건물의 측면에서도 지붕면이 용마루까지 올라가게 되어 측면에 삼각형 벽이 생기는 지붕) 건물은 13세기때 3부회 의사당(Salle des États Généraux) 건물이다. 또한 루이 12세의 궁전과 오른편에 직각으로 서 있는 건물은 16세기에 건축된 프랑수아 1(François I, 1494.9.12~1547.3.31) 궁전으로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루이 12세 궁전의 대문 위에는 루이 12세의 기마동상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오를레앙 공작(Duc d'Orléans)이 태어나고 자란 『블루아 성(Château de Blois)』은 후에 루이 12(Louis XII, 1462.6.27~1515.1.1)가 프랑스의 왕으로 즉위한 뒤에도 이곳에 거주하여 왕실의 주거지로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수도로서의 역할도 담당하게 된 성()이라 한다.

 
프랑수아 1(François I, 1494.9.12~1547.3.31)는 「앙부와즈 성(Château d'Amboise)」에서 『블루아 성(Château de Blois)』으로 옮겨와 왕비가 사망한 직후까지 머물렀으며, 새로운 건물을 짓고 성 안에 도서관을 설치하였다. 이 당시에 건축된 부분은 이탈리아 르네상스(Renaissance) 양식의 영향을 받았으며 건물의 중앙에 나선형 계단을 설계하고 중앙정원을 다양한 조각상으로 장식하였다.

 
아름다운 『블루아 성(Château de Blois)』은 아름다운 외형과는 달리 어둡고 살벌한 역사를 갖고 있는데, 앙리 3(Henry III, 1551.9.19~1589.8.2)가 프랑스의 종교전쟁 기간동안 이 성()에 머물면서 왕위 계승권을 둘러싸고 1588년 정적인 기즈공(Duke of Guise)을 암살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최초의 부르봉(Brurbon) 왕조의 왕이었던 앙리 4(Henry IV, 1553.12.13~1610.5.14)가 독살된 후 왕실의 권력 암투과정에서 미망인 마리 드 메디치(Marie de Medici)가 도피생활을 하기도 한 성()이다.

 
 
1626년 가스통 도를레앙(Gaston d'Orléans, 1608.4.24~1660.2.2)은 루이 13(Louis XIII, 1601.9.27~1643.5.14)로부터 이 성()을 결혼 선물로 받아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가스통 도를레앙은 1635년 건축가 망사르(F.Mansart)를 통하여 루이 12세가 지은 건물 맞은 편에 새로운 건물의 증축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가 사망하게 되면서 성은 완성되지 못하였고, 아직도 미완의 상태로 남아 있다. 이 건축물에는 고대 그리스 건축 양식의 특징이 가미되었는데, 건물의 중앙부에 고대 그리스식 기둥과 개선문 형식의 입구가 유명하다.

 
프랑스혁명(1789.7.14~1794.7.27)으로 『블루아 성(Château de Blois)』은 방치되고 약탈 당했으며, 성의 대부분이 파손된 상태에서 한때 병영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1841년 루이 필리프(Louis-Philippe, 1773.10.6~1850.8.26)에 의해서 역사적인 장소로서 보수를 거쳐, 현재는 르와르에셰르(Loir-et-Cher)주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르와르 고성지대(Château de la Loire, France)에 위치하고 있는 성들에서는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베란다식 복도와 화려한 슬레이트 지붕, 그리고 벽돌로 만든 굴뚝이 건축적 특징을 갖고 있는 『블루아 성(Château de Blois)을 둘러보다 보면, 생 칼레(Saint Calais) 예배당에 프랑스의 여성 영웅 잔다르크(Jeanne d'Arc, 1412.1.6~1431.5.30)1429425일 이 성()을 방문했다는 안내판과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그림(Henri Michel의 작품으로 1904년부터 전시)도 한장 걸려 있는데, 잔다르크(Jeanne d'Arc)가 오를레앙(Orléans)에서 온 잉글랜드(England) 군사를 몰아내기 위해 출정 전에 랭스 대주교(Archbishop of Reims)에게 신의 가호를 받은 곳이 바로 『블루아 성(Château de Blois)』이라는 설명이다.





 
아제 르 리도 성(Château d'Azay-le-Rideau)
 
1518년부터 1523년 사이에 건축된 아름다운 고딕 약식의 『아제 르 리도 성(Château d'Azay-le-Rideau)』은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럽지 않은 16세기 플랑드르(Flandre) 양식을 갖고 있으며, 르와르 고성지대(Château de la Loire, France)에 위치하고 있는 성들 가운데 가장 우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성()이다.

 
특히나 강물에 비치는 성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운, 1518~1529년에 걸쳐 완성된 『아제 르 리도 성(Château d'Azay-le-Rideau)』은 프랑스 양식과 이탈리아의 건축 양식이 조화를 이룬 완벽한 건축물이란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앵드르(Indre) 강을 가로지르는 섬 위에 고고하게 서 있는 『아제 르 리도 성(Château d'Azay-le-Rideau)』은 16세기 프랑스의 부유한 자본가 Gilles Berthelot(1785.9.6~1846.10.29)의 저택이었는데, 내부는 16, 17세기의 프랑스식, 플랑드르식 타피스트리(Taspestry)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으며, 가구, 회화작품, 공예품 등도 당시 모습 그대로 잘 보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석판암 지붕, 높은 굴뚝, 후추통 모양의 망루, 석조골격의 창틀 등이 자못 고딕 양식을 띠고 있지만, 전체적인 균형미가 뛰어나고 방어적 요소인 총안(銃眼), 망루, 성벽 주위의 참호() 등을 장식적으로 처리하여 매우 우아한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 『아제 르 리도 성』은 중세의 공격적인 성채에서 안락한 거주지로 변모하는 르네상스 초기의 대표적인 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성은 정원을 바라보는 정면의 직사각형 숙소와 이와 직각을 이루는 부속건물, 아울러 4개의 뾰족한 작은 망루의 구조를 하고 있다. 르와르 고성지대(Château de la Loire, France)에 위치하고 있는 성들 가운데 밤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고도 하는 『아제 르 리도 성』은 현재 프랑스 정부의 소유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