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두께가
되는 책은 비록 낯선 제목이지만 독일에서 만난 한국어라는 사실에 놀랍기만 하다. 1899년 황해도 해주
출생. 본명 이 의경. 아명 미륵. 별명은 정쇠이다. 잘 생긴 대한민국 남자의 흑백사진 한장과 함께
그에 대한 짧은 이력이 첫 페이지에 적혀 있다.

독일하고도 이곳
뮌헨에 한국 사람의 묘지가 있을 줄이야….

1920년에 독일에 와서 뷔르츠부르크 및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수학하고 1928년 뮌헨 대학교에서 동물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미륵 박사.
1946년 자전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를 독일어로 발표한 그는
전후 독일 문단의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한때는 독일의 최우수 독문 소설로 선정되어 인기를 독점할 정도로 왕성한 작가 생활을 했지만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1950년 뮌헨 교외 그래펠핑(Grafelfing)에서 타계했다.
독일 작품을
통해 한국 및 동양사상 그리고 우리의 정신문화를 서구의 기계주의 문명에 투입시켜 온 그에 대한 방송가의 취재가 한 때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비록 박사 개인에
대한 생의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세상에 밝혀지지 않은 아름다운 대한민국 청년에 대한 흔적을 찾으려는 방송가의 취재 경쟁이 한 때 열기를 띄었다고
한다.
따가운 햇살에
눈이 부시어도 묘지로 달려가는 긴장된 마음에 잠시의 피곤을 잊고 드라이브에 취해 있었다.
뮌헨을 완전히
빠져 나와 시골 분위기가 물씬 나는 작은 마을이다. 관리 받지도 관리 받을 수도 없었던 무덤은 남은
묘 옆에 끼어 잡초 넝쿨 아래 오랜 세월 숨어 있었다고 한다.
최초의 한국인
문화대사 이 미륵 박사에 대한 독일 교민들의 노력으로 1995년에서야 비로소 현재의 자리로 이장이 마무리
되었다고 한다.
눈에 익은 화강암
비석만 봐도 주인의 국적을 알겠다. 또렷하게 한국어까지 적혀 있으니 누가 봐도 대한의 무덤이다.
지붕을 올린
비석을 중심으로 주변은 꽤 정리가 잘 되어 있다. 그동안 다녀간 높으신 분들이 심어놓은 크고 작은 기념수들로
묘지는 더욱 이쁘게 단장되어 있다.
잘생긴 박사의
미소 띤 얼굴을 보니 당시 독일 유학 시절 얼마나 많은 여인들의 인기를 받았을까 짐작해 본다. 비록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에 묻히고 말았지만 그를 존경하는 많은 독일 사람들은 아직도 그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내 죽으면
꼭 닥터 리 옆에 묻어다오’
박사 무덤 오른쪽
뒤편에는 어느 여인의 무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자리를 잡고 있다. 죽어서라도 박사와 함께 하겠다는 그녀의
유언대로 비록 나란히는 아니지만 박사 무덤 가까이 묻어주었단다. 살아생전 박사에 대한 덕망과 존경을
죽어서도 함께 하겠다는 그녀의 유언 앞에 가족들도 할 말을 잃었다.
아무리 시골
공동묘지라지만 이곳은 독일 사람이라도 쉽게 묻힐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데. 그런 곳에 묻힌 이 미륵
박사의 생애가 독일인들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주었는지 객도 상상만 할 뿐이다. 한적한 시골 그래펠핑
묘지는 한 남자의 고독한 유학 생활과 아름다운 생의 기억들을 고스란히 묻고 있지만 햇살 눈부신 오후에 묘지로 향한 발걸음은 행복하기만 하다.
솔솔한 바람에
이마에 송근 땀방울을 식히며 차디찬 비석을 만져본다. 아마도 이 특별한 촉감은 오래도록 객의 마음에
촉촉히 스며들 것 같다. 앞으로 많은 여행자들이 이곳에 들러 가기를 기도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