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농 성(Château
de Chinon)
프랑스 서부 앵드르에르와르(Indre-et-Loire)주에 있는 작은 도시 시농(Chinon)에
있는 『시농 성(Château de Chinon)』은 신의 계시를 받은 잔다르크(Jeanne d'Arc, 1412.1.6~1431.5.30)가 샤를 7세(Charles VII, 1403.2.22~1461.7.22)에게 영국에 대항하기 위한 프랑스 군대를 일으킬 것을
호소한 곳으로 유명한 성(城)이다.
비엔느(Vienne)강이 내려다 보이는 『시농 성(Château de Chinon)』은
대지 39.02㎢에 가로 400m, 세로 76m, 높이 35m의 규모로 대형 시계탑과 400개가 넘는 방이 있어 르와르 고성지대(Château de la Loire, France)에 위치하고 있는 성들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성(城)이다. 하지만 성의 내부에 있던 가구들이 프랑스 대혁명(French
Revolution, 1789.7.14~1794.7.28) 때 약탈당해서 대부분의 방들은 비어 있는 실정이다.
『시농 성(Château de Chinon)』은 954년에 블루아(Blois)의 백작인 테오발트 1세(Theobald
I, 1234~1253)에 의해서 요새로 지어졌으며, 12세기에는 영국의 왕이었던 앙리
2세(Henry II, 1133.3.5~1189.7.6)의
거처가 되었고 이때 앙리 2세는 성(城)의 많은 부분을 새로 건축했다고 한다. 앙리 4세(Henri IV,1553.12.13~1610.5.14) 때에는
감옥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며, 나중에 나폴레옹 3세(Napoléon III, 1808.4.20~1873.1.9)가 부분적인 복구를 했다고 한다.
『시농 성(Château de Chinon)』은 「밀레 성(Château du
Milleu)」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성 조르쥬성(Fort St. Georges)」이, 서쪽으로는 「쿠드라이 성(Fort du Coudray)」의 세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 성채(城砦)
사이에 깊은 해자(垓子;
Moat;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밖을 둘러 파서 못으로 만든 곳)가 있다. 「쿠드라이 성」은 1307년에
일어난 잔인한 탄압에 의해서 성전 기사단(Knights Templar; Ordre du Temple;
Pauperes commilitones Christi Templique Solomonici; 그리스도와 솔로몬 성전의 가난한 기사들)원들이 갇혔던 곳으로 아직도 벽에는 그 곳에 갇혀있던 기사단원들이 새겨놓은 낙서가 있다. 「밀레 성」의 정원 왼쪽에는 황실견 사육장이었던 투르데쉬엥(tour des
chiens)이 있다.
백년전쟁(Hundred Years' War, 1337~1453 단속적으로 계속됨)의
말기였던 1429년 3월 8일에는
프랑스의 황태자 샤를 7세(Charles VII,
1403.2.22~1461.7.22)의 거처였던 『시농 성(Château de Chinon)』에
신의 계시를 받은 잔다르크(Jeanne d'Arc, 1412.1.6~1431.5.30)가 방문하여 영국에
대항하기 위하여 프랑스의 군대를 일으킬 것을 황태자에게 호소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성(城)에는 잔 다르크(Jeanne d'Arc)와 관련된 많은 전시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