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February 21, 2012

Ⅴ. Musical 『Notre Dame de Paris』 관람 포인트 (3) 문학(Literature)

Musical Notre Dame de Paris』 관람 포인트》 ··· 문학(Literature)

처음 뮤지컬 『Notre Dame de Paris(노트르담 드 파리)』 공연을 관람하면서 극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장엄하고 매혹적인 선율에 압도 당하면서 받은 감동은 ‘Victor Marie Hugo(빅토르 위고, 1802.02.26~1885.05.22)’의 원작 소설 『Notre-Dame de Paris(노트르담 드 파리, 1831)』에 대한 접근을 통하여 더욱 더 구체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의 경우도 역시 뮤지컬 『Notre Dame de Paris』 공연을 처음 접했을 때 강렬하게 다가온 음악을 통하여 느낀 감동을, 빅토르 위고의 『Notre-Dame de Paris』 소설 원작에 대한 문학적인 접근 후 두번째 관람을 하면서 작품에 대한 이해의 폭이 높아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의 대표작품을 프랑스 최고의 국민 뮤지컬로 탄생시켰다는 뮤지컬 『Notre Dame de Paris』는 문학적 접근을 통하여 비로서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완성될 것이란 생각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54곡의 Aria(아리아)를 통해서 시종일관 관객을 압도하는 뮤지컬 『Notre Dame de Paris』의 완숙한 이해도를 위한 문학적 접근은 크게 두가지 방향이 있다고 생각된다.
 
첫번째 방향은 노트르담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의 종지기인 꼽추 Quasimodo(콰지모도)의 애절한 순애보 이야기로 원작 『Notre-Dame de Paris(노트르담 드 파리, 1831)』를 이해하고 뮤지컬을 관람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15세기, 아름다운 노트르담 대성당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숙명 같은 사랑의 이야기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아름다운 집시여인 Esmeralda(에스메랄다)를 사랑하는 세 명의 남자… 신과의 맹세를 어겨야 하는 욕정에 사로잡힌 Frollo(프롤로) 주교, 약혼녀를 배신하고 한 순간 스쳐 지나는 욕망에 빠진 근위대장 Pheobus(페뷔스), 자신의 존재를 유일하게 긍정해 준 아름다운 집시여인과 사랑에 빠진 슬픈 성당의 꼽추 종지기 Quasimodo(콰지모도)의 이야기-로 뮤지컬 『Notre Dame de Paris』 공연을 관람하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서로 다른 삼색의 사랑 이야기 속으로 빠져보는 것도 그리 나쁜 방법은 아닐 것이다. 치명적인 매력에 빠진 세 남자의 숙명 같은 사랑을 15세기가 아닌 오늘의 우리네 시간 속에서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두번째 방향은 원작의 작가인 빅토르 위고가 소설 『Notre-Dame de Paris』를 발표할 당시의 사회상을 이해하고, 빅토르 위고가 글을 적어내려가며 의도한 시각에서 뮤지컬을 관람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언뜻 보기에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지기인 꼽추 Quasimodo(콰지모도)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것 같은 소설 『Notre-Dame de Paris』는 사실 훨씬 복잡하고 정교한 세상을 담고 있다.
 
18세기 말 프랑스혁명(Révolution Française, 1789.07.14~1794.07.28)’과 함께 손끝에 잡힐 듯 했던 프랑스의 자유와 평등은 ‘Maximilien François Marie Isidore de Robespierre(로베스피에르, 1758.05.06~1794.07.28)’의 공포정치로 인해 다시 한번의 시련을 겪게 된다.
 
1820년대 후반의 경제위기, 극단적인 반동정책(反動政策), 급기야 1830 7 25일 소위 ‘7월 칙령(출판 자유의 정지, 하원의 해산, 선거자격의 제한 등)’의 발표 등이 기폭제가 되어 1830 7 27일 이른바 ‘7월 혁명(La Révolution de Juillet; 1830년 프랑스혁명이라고도 함; 1830.07.27~07.29)’이 일어난다. ‘7월 혁명‘3일의 영광(Three Glorious Days; 27일부터 3일동안의 혁명이라는데서 칭함)’이라고 불려지는 부르주아(Bourgeois)혁명으로 시민의 왕인 ‘Louis-Philippe d'Orléans(루이 필리프 도를레앙; Louis-Philippe Ier, 1773.10.06~1850.08.26)’을 프랑스 왕위에 오르게 하였고, 그동안 금지 되었던 《자유·평등·박애》를 상징하는 현재의 프랑스 삼색기(Le drapeau tricolore, 파랑-자유, 하양-평등, 빨강-박애)를 사용하게 되었다. 삼색기는 절대왕조(絶對王朝)에 대항하여 일어난 시민혁명을 표상한 것으로 국민주권(國民主權)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1830‘7월 혁명과 그 영광의 3이후 다시 부활시킨 왕의 존재로 세상이 뒤숭숭하던 1831, 그 속에서 자유와 낭만을 외치던 스물아홉의 빅토르 위고는 교회가 세상의 중심에 있고 마녀사냥이 한창이던 15세기로 시간을 되돌려 교회와 이도교들의 갈등, 삶과 죽음, 인간의 욕망 등을 하나의 이야기 속에 녹여냈다. 빅토르 위고는 그의 소설 『Notre-Dame de Paris』에서 사랑 이야기를 하면서 당시의 사회를 냉정하게 비판하고, 여기에 철학적인 문제까지 절묘하게 엮어냄으로써 당시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것이다.
 
소설 『Notre-Dame de Paris』가 발표될 당시의 사회상을 이해하면서 등장인물에 대한 재해석을 하는 것은 본 뮤지컬의 또다른 관람방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뮤지컬 『Notre Dame de Paris』의 각 등장인물에 대한 본인의 개인적인 해석은 다음과 같다.
 
Quasimodo(콰지모도)는 프랑스 혁명과 통령정부, 프랑스 제1제국에 대한 핵심적인 사상의 기반을 마련한 성직자이자 정치가였던 ‘Emmanuel Joseph Sieyès(에마뉘엘 조제프 시에예스, 1748.05.03~1836.06.20)’를 묘사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다. 1789프랑스 혁명(Révolution Française)’ 전야에 《Qu’est-ce que le tiers état(3신분이란 무엇인가)?》라는 소책자를 발표, 3신분의 포부를 명시하면서 유명해진 에마뉘엘 조제프 시에예스는 "사회학"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학자이기도 하다. 그의 사상은 인권선언 및 혁명 후의 헌법제도 확립에 큰 영향을 끼쳤다.
 
Esmeralda(에스메랄다)는 프랑스의 자유와 혁명정신을 상징하는 여신 ”Marianne(마리안느)”로 조명할 수 있을 것이다. 마리안느는 프랑스 낭만주의 예술의 최고 대표자로 쏜꼽히는 ‘Ferdinand Victor Eugène Delacroix(외젠 들라크루아, 1798.04.26~1863.08.13)’의 작품 중 1830 728일에 있었던 ‘7월 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그때의 현장을 생생하게 그려놓은 그림 《La Liberté guidant le people; Liberty Leading the People(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 묘사되어 있는데, 자유를 상징하는 여성이 한 손에는 삼색기(Le drapeau tricolore)를 들고 다른 손에는 총검을 휘드르며 동료들의 시체를 넘어 앞으로 전진하고 있다. 마리안느는 프랑스를 의인화한 인물로 자유, 평등, 박애라는 말로 상징되는 《프랑스의 가치》를 나타내며 관공서나 법원 등을 비롯해 프랑스의 도처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지폐와 동전, 우표에도 그려져 있다.
 
Frollo(프롤로)는 역사상 망명한 최초의 왕족으로 기억되고 있는 Charles X(샤를 10; Charles-Philippe, comte d' Artois라고도 함; 1757.10.09 ~1836.11.06)로 조명이 가능할 것 같다. 입헌군주제에 대해 철두철미하게 반대하며 절대왕정의 부활을 꿈꾸던 그는 정기 간행문 발행 금지, 의회 해산, 선거권은 오직 납세 액수로만 부여등의 칙령으로 전제정치를 하였다. 결국 프랑스 국민들의 계속된 불만이 폭발하여 1830‘7월 혁명이 일어났으며, 이 혁명으로 인해 퇴위당한 그는 왕족으로서는 최초로 영국으로 망명을 하게 되는 불명예를 얻게 된 인물이다.
 
거리의 음유시인으로 관객과 배우 사이를 오가면서 작품을 이끌어 나가는 안내자 역할을 했던 Gringoire(그랭구아르) 1830‘7월 혁명으로 왕위에 오르게 된 시민의 왕‘Louis-Philippe d'Orléans(루이 필리프 도를레앙; Louis-Philippe Ier, 1773.10.06~1850.08.26)’으로 묘사가 가능할 것이다. ‘루이 필리프가 왕위에 오르고 그동안 금지 되었던 《자유·평등·박애》를 상징하는 현재의 프랑스 삼색기(Le drapeau tricolore, 파랑-자유, 하양-평등, 빨강-박애)를 사용하게 되었는데, 삼색기는 절대왕조(絶對王朝)에 대항하여 일어난 시민혁명을 표상한 것으로 국민주권(國民主權)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카리스마 넘치는 집시 이방인들의 우두머리이자 에스메랄다의 보호자로 그녀를 구하기 위해 목숨까지 바친 Clopin(끌로팽)은 프랑스의 대토지 소유의 귀족이었으나 자유사상을 갖고 있어 프랑스 혁명에 참여했던 인물로 입헌군주제를 만들려고 하다 옥고를 치뤘으며 감옥에서 풀려난 후인 1830‘7월 혁명때 국민군의 사령관을 지낸 ‘Gilbert du Motier de La Fayette(질베르 뒤 모티에 드 라파예트, 1757.09.06~1834.05.20)’ 후작을 묘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에스메랄다의 매력에 빠져 약혼녀 Fleur-de-Lys(플뢰르--리스)를 배신하고 에스메랄다의 사랑을 얻게 되었지만, 에스메랄다가 누명을 쓰고 위험에 처하자 그녀를 배신하고 다시 플뢰르--리스에게 돌아간 파리시의 근위대장 Pheobus(페뷔스)는 국왕 샤를 10세와 함께 의회와 국민을 무시하고 독단적인 통치로 국민과 지식인, 자본가로부터 미움을 받았던 프랑스 왕정 복고 시절의 마지막 총리였던 ‘Prince Jules de Polignac(프랭스 쥘 드 폴리냐크; 3rd Duke of Polignac; Jules Auguste Armand Marie de Polignac이라고도 함., 1780.05.14~1847.03.02)’라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에스메랄다에 대한 강한 질투심에 페뷔스를 시험하고,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원인을 제공한 페뷔스의 약혼녀인 Fleur-de-Lys(플뢰르--리스)는 프랑스의 ‘Marie Thérèse Charlotte de France(마리 테레즈, 1778.12.19~1851.10.19)’ 공주의 캐릭터라 생각하면 원작에서 빅토르 위고가 의도했던 바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