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October 03, 2009

스코틀랜드 에든버러(Edinburgh, Scotland)

내 인생에 잊지 못할 에든버러 여행(Unforgettable Edinburgh Trips of My Life)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Edinburgh) 50만 인구에 바다와 언덕으로 둘러싸인 그리 크지 않은 도시이다. 한때 공적으로는 정직하지만 사적으로는 악덕한 도시라 불렸던 이 도시는 오늘날도 여전히 묘한 양면성을 띠고 있다. 예로부터 금융업이나 보험업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산업으로 도시의 부를 축적해왔지만 자기 능력이나 재력을 과시하지 않는 것은 이곳 사람들의 전반적인 성향이라 할 수 있다. 화려한 스포츠카도 눈에 잘 띄지 않고, 부유층은 신시가지(New Town)의 조지 양식(George Type)풍 담 너머에 조용히 모여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운이 좋거나 어디를 가야 할지 분명히 알고 있지 않으면 에든버러의 이런 면모를 들여다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에든버러와의 첫 만남을 시작하는 데 기차를 이용하는 건 꽤 괜찮은 방법이다. 웨이벌리 기차역(Waverley Station)에서 내려 웨이벌리 브리지(Waverley Bridge)로 걸어 나오면 에든버러 캐슬록(Edinburgh Castle Rock)이 시선을 끌고 그 아래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는 스콧 기념탑(Scott Monument)이 반긴다.
월터 스콧(Walter Scott, 1771.08.15~1832.09.21)은 생전에도 누구나 인정하는 성공담의 주인공이었다. 작가로서 성공한 것은 물론 당시 잉글랜드 왕인 조지 4(George IV, 1762.08.12~1830.06.26)가 에든버러를 방문하도록 도모하고 이를 기회로 삼아 타탄체크(Tartan check) 무늬 치마의 착용을 대중화했다. 평생 스코트랜드를 벗어난 적이 거의 없는 월터 스콧에 비해 에든버러 출신의 또 다른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 1850.11.13~1894.12.03)은 방랑의 삶을 산 탓인지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는 편이다.
레이디 스테어스 클로즈(Lady Stair’s Close)에 자리한 작가 박물관(The Writer’s Museum)에 가면 이 두 작가에 관한 기록을 볼 수 있다.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전시품은 병치레가 잦았던 스티븐슨의 어린 시절 그의 침실에 있던 옷장. 이 옷장은 낮에는 시의원이자 목수, 밤에는 도둑이라는 이중생활로 유명했던 윌리엄 브로디(William Brodie, 1741.09.28~1788.10.01)가 만든 것으로 그의 일화는 후에 스티븐슨의 무시무시한 걸작 《지킬 박사와 하이드(Dr. Jekyll and Mr. Hyde, 1886)》가 탄생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브로디(Brodie)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도플갱어(Doppelganger) 스코틀랜드 문학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다. 하지만 원조 도플갱어는 에든버러라는 도시 자체일지도 모른다. 에든버러의 공적인 면만을 보여주는 관광 루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이곳의 또 다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오늘 본인이 산책 코스의 출발점으로 삼은 곳은 옥스퍼드 바(Oxford Bar)이다. 시내 중심에 있으면서도 살짝 숨어 있는 위치, 아담한 규모, 에든버러의 축소판 같은 분위기가 그렇다. 에든버러에는 한때 40여 개의 양조장이 있었는데,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은 이곳에서 직선거리로 대략 3㎞정도 떨어진 칼레도니아 브루어리(Caledonian Brewery) 한 곳뿐이다. 본인이 옥스퍼드 바에서 즐겨 마셨던 인디아 페일 에일(India Pale Ale)이 바로 그곳에서 만들어진다.
옥스퍼드 바에서 나와 퀸스페리 스트리트(Queensferry Street)로 들어선다. 랜돌프 클리프(Randolph Cliff)에 가까워지자 거리에서 상점이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곧 표지판에 리스라는 지명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리스(Leith) 강을 따라 뻗어 있는 길은 개를 산책시키거나 조깅하는 이들 외에는 아무도 찾지 않는 고즈넉한 거리이다. 리스까지 걷는 대신 딘(The Dene)으로 들어선다. 이곳에서는 에든버러에서 가장 예쁜 거리 중 하나인 앤 스트리트(Ann Street)를 둘러봐도 좋지만 본인은 스톡브리지(Stockbridge)로 향하는 코스를 추천하다. 여기서부터 신시가지(New Town) 일대까지 짧은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에든버러 성(Edinburgh Castle)에서 홀리루드하우스 궁(The Palace of Holyroodhouse)에 이르는 구시가지(Old Town)에 인구 과밀과 위생상의 문제가 대두되자 18세기 후반 신시가지(New Town)를 조성하기 위한 공사가 시작되었다. 본인의 최종 목적지는 자메이카 스트리트(Jamaica Street)에 있는 케이 바(Kay’s Bar)인데, 말 없이 계속 된 산책 뒤에 목을 축이는 짧은 휴식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되어서 이다. 세상에는 어딜 가나 이야기 꽃이 피는 도시도 있지만 에든버러는 아니다. 하지만 조용하고 내성적이며 사색이 어울리는 이 도시의 사람들도 각자 즐겨 찾는 술집에 들어서면 긴장을 풀고 환담을 주고 받는다.
케이 바에서 퀸 스트리트(Queen Street)를 따라 걷다 보면 조지 스트리트(George Street)가 나온다. 과거에는 이 길을 따라 은행이 늘어서 있었지만 현재는 대부분 바와 레스토랑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돔(Dome)이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이 되어버린, 스코틀랜드 상업은행 본부처럼 말이다. 조지 스트리트 끝은 리스 워크(Leith Walk)거리와 만나는 지점이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코넌 도일 바(Conan Doyle Bar) 맞은 편에 서면 셜록 홈스(Sherlock Holmes, 1887)의 동상이 보인다. 자신이 다니던 대학의 교수 중 한 명을 모델로 추리소설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인물을 창조해 낸 코넌 도일(Arthur Conan Doyle, 1859.05.22~1930.07.07) 역시 에든버러 출신이다.
걷는 동안 잔뜩 흐렸던 날씨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화창해졌다. 나는 음반 구경이나 할 심산으로 백비트(Backbeat) 레코드 상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LP판 수집을 위해 1년에 두어 번씩 런던에서 에든버러까지 오는 사람이 있을 만큼 이 도시에는 꽤 괜찮은 레코드 상점이 곳곳에 숨어 있다. 백비트도 그 중 하나이다. 1981년 처음 문을 열었으며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약 6 5천여 장의 앨범을 소장하고 있다.
백비트를 빠져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향한 곳은 블랙퍼드 글렌 로드(Blackford Glen Road)이다. 이곳에서 허미티지(Hermitage)까지 나무가 우거진 가파르고 좁은 계곡길이 이어진다. 남쪽으로는 브레이드 힐스 골프 코스(Braid Hills Golf Course), 북쪽으로는 블랙퍼드 힐(Blackford Hill)이 펼쳐져 있어 마치 시골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지역 주민들만 알고 있는 이곳은 진정 숨겨진 에든버러이다. 이곳에서라면 누구도 이방인이 아니라 친밀한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4시간이 채 걸리지 않은 에든버러 산책앞으로도 에든버러 산책은 한층 깊이, 더 많이 알고 싶은 열망이 남아 있는 한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