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눈이 시리게 푸르고,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이 선뜻하게 분다. 10월이다. 환절기 감기에 고생하는 이들과 여기저기 속앓이 하듯 가을을 타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는 말도 있지만, 가을 타는 데 남녀가 따로
없다.
가을을
표현하는 전형적인 이미지는 바바리코트 깃을 세우고 낙엽 깔린 길을 걷는 남자다. 하지만 가을 타는 이들을
보면 남자보다 여성이 더 많다는 조사도 있다. 흔히 가을 탄다고 하면 감상적이거나 사치스러운 기분이라고
치부하는 분위기도 있지만,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심한
경우 의학계에서는 계절성 우울증(SAD; Seasonal Affective Disorder)이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계절성
우울증은 일조량과 연관이 있다. 햇볕을 적게 받고 기온이 낮아지면, 뇌에서
생성되는 신경전달물질 멜라토닌(melatonin) 분비에 이상이 생긴다. 멜라토닌은 우리 몸의 수면주기 조절과 생체리듬 조절 등의 기능을 맡고 있다.
그런 만큼, 균형이 깨어지면 수면이나 진정 작용에 이상을 일으켜 우울한 기분이 되는 것이다. 특히 계절성 우울증 환자를 살펴보면, 외부의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뇌의 시상하부 능력이 저하돼 계절의 변화에 남들보다 민감한 경우가 많다. 주로 가을과
겨울, 이른 봄에 우울증이 나타나고, 늦은 봄과 여름에는
반대로 기분이 좋아진다. 계절성 우울증은 만성피로, 집중력
저하, 긴장, 초조감 등을 동반하기도 한다.
또한, 계절성 우울증은 특이하게도 식욕이 증가하고 과다 수면이 나타나서 많이 먹고 많이 자는 증상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다. 식욕 감퇴, 불면을 동반하는 일반적인 우울증과 크게
구별되는 점이기도 하다. 가을날, 기분은 우울한데 자꾸 뭔가
먹고 싶어진다면 이 또한 계절성 우울증일 확률이 높다. 신체적으로는 갱년기 증상을 겪는 중년 여성들과
전립선염이 있는 남성들이 찬바람이 부는 가을을 더 심하게 타는 경향도 있다. 이처럼 가을 타는 원인으로는
일조량의 변화로 인한 계절성 우울증, 계절 변화로 인한 신체 컨디션 저하 외에도 심리적인 요인도 있다. 흔히 가을을 결실의 계절이라 부르는데, 특히 중년의 경우 지난 1년을 뒤돌아보며 느껴지는 심리적 위기감이 가을을 심하게 타게 만든다.
무엇보다
가을 타는 사람에게 특효약은 햇볕이다. 가을 타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일조량의 갑작스러운 변화이기
때문에 햇볕을 많이 쬐어 신체 리듬을 다잡아주는 것이 좋다. 그만큼 햇볕은 정신 건강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일조량이 줄어드는 가을이나 겨울에는 되도록 햇볕을 쬐는 시간을 늘리고, 산책이나 자전거 k기, 조깅
등으로 건강을 돌보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햇볕은 정신
건강뿐만 아니라 신체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전립선암, 유방암
등의 위험을 줄이며 뼈를 튼튼하게 만드는 비타민 D를 피부에서 합성시킨다.
평소 볕
보기 어려운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이나 주말, 잠깐씩이라도 곧 햇볕을 즐기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실내에서도 더 많은 빛을 쬐기 위해 실내 조도를 높이고, 낮에 커튼을
치지 않거나, 창문 쪽을 향해 앉는 것도 도움이 된다. 또
포만감이 들도록 폭식하지 않는 식습관의 교정도 중요하다.
햇볕을
자주 쬐는 것과 함께 몸과 마음에 위로가 되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을 주변에 가까이 두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따뜻한 스웨터, 폭신한 털슬리퍼, 따뜻한 차, 부드러운 스카프, 감미로운 음악…
초조하고 무기력한 기분을 달래주는 데는 음악만한 것이 없다. 음악을 들을 때 이어폰 보다는
귀를 감싸주는 폭신한 헤드폰을 쓰는 것도 좋다. 한편 건조한 가을 메마른 피부를 위해 스팀타월이나 촉촉한
수분 화장품을 사용하는 것도 가을 타는 피부에 꼭 필요한 일이다. 특히 남성 피부는 여성보다 피지량이
많은 반면 수분 함유량은 적기 때문에 환절기로 접어들면 피부가 더 메마르고 각질이 생기기 쉬우니 각별히 신경 쓰자. 계절성 우울증은 대부분 일조량이 늘어나는 봄이 되면 자연스럽게 치유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울증이 2주 이상 지속될 경우, 그리고 그 증상이 심해 일상적인 생활이 힘들 경우에는 병원을 찾아 전문의와 상담해 보는 편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