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December 04, 2010

색채의 시인, 색채의 마술사 ∙∙∙ 마르크 샤갈(Marc Zakharovich Chagall)의 작품세계

『사랑으로 채색된 샤갈의 작품세계로』

며칠 동안 감기로 머무르던 자리를 털고 ‘마르크 샤갈(Marc Zakharovich Chagall, 1887.07.07~1985.03.28)의 그림 전시회 – 색채의 마술사 마르크 샤갈’를 다녀왔다. 눈이라도 내려줬으면 하는 날이었다. 국내 미술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2004년 첫 샤갈 전시에 이어서 이번 전시는 샤갈 예술의 총체적인 접근을 통해 샤갈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완결판인 동시에, 샤갈의 시적인 회화예술을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이번 ‘샤갈전’에는 유화 및 종이작품 등 총 164점이 테마별로 전시되어 있었다.

나와 마을, 성서이야기 등 6개의 테마로 구성』

샤갈의 작품은 크게 시기별로 소연방 시기(1910~1922), 파리 시기(1923~1941), 미국 망명 시기(1941~1948), 그리고 프랑스 정착 시기(1948~1985)로 구분되는데, 이번 전시회에서는 샤갈의 작품에 등장하는 테마를 통해서 쉽게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었다.
총 6개의 테마 《나와 마을》, 《성서 이야기》, 《사랑과 연인》, 《유대인 예술극장》, 《서커스》, 《종이작품》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각 테마별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나와 마을》에서는 소연방 시기에 러시아의 토속적인 삶과 일상을 몽환적인 이상으로 담아낸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대표작으로는 『나와 마을(I and the Village, 1911)』, 하늘을 나는 아름다운 연인을 그린 『도시 위에서(Over the Town, 1914~1918)』, 『산책(Promenade, 1917~1918)』 등 널리 알려진 작품들과 김춘수 시인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라는 시로 국내 대중에게도 익숙한 『비테프스크 위에서(Over Vitebsk, 1915~1920)』 등의 걸작도 전시되었다. 벨기에와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 미술관에서 대여한 이 작품들은 샤갈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몽환적이면서도 동화적인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또한, 《성서 이야기》에서는 유대인 태생인 샤갈이 삶의 구원을 통해 인류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성경을 회화적으로 그려낸 작품을, 《사랑과 연인》에서는 샤갈 예술의 모토인 사랑하는 연인을 통해 삶의 꿈과 기쁨을 담은 걸작을, 《유대인 예술극장》에서는 모스크바 유대인 예술극장 장식화로 제작한 기념비적인 작품 총 7점의 거대한 작품들이 최초로 그 완전한 모습으로 전시되어 샤갈 예술의 웅장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서커스》에서는 유랑 극단의 익살스러운 인물을 현란한 복장으로 표현한 어릿광대 등 곡예단 인물을 주된 소재로 삼은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종이작품》에서는 샤갈이 전 생애를 통해 시도했었던 다양한 삽화들의 만남을 가질 수 있는 기회였다. 이곳에서는 색채의 화려함이 가장 두드러진 『아라비안 나이트의 네 가지 이야기(Four Tales from the Arabian Nights, 1948)』, 『다프니스와 클로에(Daphnis and Chloe, 1961)』, 『라퐁텐 우화(The Fables of La Fontaine, 1927~1930)』 등 고전을 판화로 형상화한 주옥 같은 작품들이 샤갈 예술의 색감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유대인 예술극장 장식화 완결판 국내 첫 공개』

이번 ‘샤갈’전에서 본인이 가장 관심을 가졌던 작품은 소연방(蘇聯Soviet Union, 1917.11~1991.12) 시절에 제작된 《유대인 예술극장 장식화(Decoration of the Jewish Theatre, 1920)》였다. 이 작품들은 스탈린(Iosif Vissarionovich Stalin, 1879.12.21~1953.03.05)의 집권으로 유대인 예술극장이 폐쇄되면서 50년이 넘게 국립트레티아코프미술관(Gosudarstvennaya Tret'yakovskaya Galereya, Moscow, Russia)의 창고에 방치되었다가, 샤갈이 망명을 떠난지 51년 만인 1973년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의 작품이 영원히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었던 샤갈은 크게 감격해 자신의 작품들에 사인을 했다고 한다.

미술평론가인 재키 울슐라거(Jackie Wullschlager)는 그의 ‘샤갈 평전(Chagall: A Biography)’에서 샤갈의 지지자였던 어느 한 화가가 극장이 폐쇄될 때 몰래 그의 장식화를 등에 지고 미술관으로 옮겼다고 밝히고 있다. 이 작품들은 1987년 스위스 재단의 도움으로 5년여에 걸친 복원 작업을 통해 원형의 모습을 되찾았고 1991년에야 비로서 처음 일반에게 공개된 것이다.
71년 만에 복원된 유대인 극장 장식화

모스크바에 있던 유대인 극장(Moscow State Yiddish Theater)의 내부 장식화로 1920년 제작된 《유대인 예술극장 장식화(Decoration of the Jewish Theatre)》는 가로 787, 세로 284 크기의 캔버스에 그려진 대형 작품인 『유대인 예술극장 소개(Introduction to the Jewish Theatre)』와 『결혼 피로연 테이블(Wedding Table), 『무대 위의 사랑(Love on the stage), 『문학(Literature, 81.3X216), 『연극(Drama, 81.3X216), 『음악(Music, 107.8X213.3), 『무용(Dance, 103.2X212.5)』 등 모두 7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특히 유대인 예술극장 소개, 결혼 피로연 테이블 등은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전시되는 것이라 본인의 발이 바삐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2004년 국내에서의 첫 샤갈전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림을 볼 수 있다는 마음에 한걸음에 미술관을 찾았다. 2004년에 일부 선 보인 바 있는 4점과 함께 이번 전시에는 완전한 7점의 형태로 공개되어 샤갈의 예술적, 철학적 영감을 한눈에 보여주는 백미라 할 수 있었다.
러시아에서 천대받는 유대인으로 태어나 가난과 핍박에 시달리던 샤갈은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예술가로서의 지위를 인정받게 된다. 예술인민위원으로 임명된 그는 고향 마을 비테프스크(Vitebsk)에 미술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으로 취임한다. 그러나 교수들 중 추상미술만 가르칠 것을 주장한 절대주의 화가 말레비치(Kazimir Severinovich Malevich, 1878.02.23~1935.05.15)와의 예술관 차이로 갈등을 빚었고, 결국 그와의 권력 싸움에서 밀려나 학교를 그만두고 1920년 모스크바로 떠났다. 이때 모스크바에 새롭게 지어지는 유대인 예술극장의 내부 장식화를 의뢰 받고 샤갈은 마음의 상처를 달래기라도 하듯이 자신의 흔들림 없는 예술관을 밤낮으로 장식화 제작에 매달려 극장 전체를 덮는 작품들을 창조해 냈다. 그는 소용돌이치는 듯한 거대한 화폭 속에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인물, 물구나무를 선 광대, 악사, 동물, 러시아의 자연환경 등을 그려 넣었다. 이것은 추상미술에 대한 거부였고, 예술은 이해하기 쉽고 대중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과 유대문화의 가치 등의 메시지를 진솔하게 드러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눈에 들어 온 샤갈의 그 밖의 걸작들』

샤걀은 1887 7화갗라는 단어조차 낯선 궁벽한 곳인 러시아 변방의 유대인 빈민촌 마을인 비테프스크(Vitebsk)에서 9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가 미술학원에 다닌 것도 사진사처럼 밥벌이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족의 기대에서였으며, 샤갈의 삶도 동쪽에서 서쪽으로 옮겨 다니며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러시아에서 독일 베를린과 프랑스 파리로, 나치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 다니며 예술적 성취에 목말라 했다.

샤갈의 작품 속에는 유대주의와 사랑에 대한 집착이 내재되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샤갈은 뮤즈 벨라를 만나면서 영혼의 동반자로 여기게 되었으며, 그에게 벨라는 한 가닥의 끊어질듯한 실로 연결되어 있었던 러시아를 연결해 주는 살아 있는 존재였다.

젊은 시절 그린 『죽은 자』와 『검은 장갑을 낀 약혼녀』, 『바이올린 연주자』 등 그가 남긴 작품들은 그를 잘 설명하는 도구가 됐다. 이들 작품은 그를 20세기 가장 독창적인 화가의 반열에 올려놓게 했다. 샤갈은 90살이 넘어서도 붓을 내려놓지 않으며 작품 활동을 펼쳤다 그가 세상을 떠난 때는 1985 3. 천재 예술가가 지구에서 유영하며 보낸 기간은 97 8개월이었다. 세상을 떠나던 날도 조용히 작업실에서 보낸 후, 승강기를 타고 내려오다가 심장발작을 일으켜 사망했다. 그는 고난의 세월을 살았지만, 영원히 기억되는 천재화가로 남았다.

마르크 샤갈처럼 망명자로 핍박 받는 고난의 삶을 산 화가는 많지 않다. 그는 정신세계에 대한 탐미는 물론 인상파와 입체파, 추상화의 영향을 흡수했던 화가라 할 수 있다. 독일 표현주의에도 큰 영향을 끼친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샤갈은 현대 미술의 태동을 알리는 화가였다. 구상 미술의 위대한 화가였던 샤갈은 근대 예술의 개척자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샤갈은 같은 직군의 화가보다는 세기를 건너뛰었던 위대한 예술가들과 비교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루스트(Marcel-Valentin-Louis-Eugene-Georges Proust)와 카프카(Franz Kafka), 제임스 조이스 (James A. Aloysius Joyce), 프로이트(Sigismund Schlomo Freud) 등 당대를 건너뛴 이들을 샤갈과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다양한 고난과 경험을 밑거름으로 일생에 걸쳐 샤갈이 추구한 열망과 사랑의 메시지, 그 열정은 풍부하고 자유로운 그의 작품 속에 살아 있었으며, 그의 색채는 여전히 꿈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이번 전시회에서 샤갈을 대표하는 걸작이라 할 수 있는 『파란 집(The Blue House, 1917), 『누워있는 시인(The Poet Reclining, 1915), 『수탉(The Cock, 1928), 『농부의 삶(Peasant Life, 1925)』 등도 오랜만에 다시 재회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샤갈과 본인이 느끼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다른 것 같다는 것이었다…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 or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샤갈의 작품을 감상하고 전시실을 나서는데 참 잘 어울리는 한쌍의 커플이 내게 다가와 질문을 했다. “혹시 『샤갈의 눈내리는 마을』이라는 작품이 어디에 전시되어 있는지 아세요? 저희는 아무리 찾아봐도 그 작품은 보이지 않아서요…”라고…… 너무 티없이 맑고 밝은 얼굴로 한 질문이어서 차마 그땐 바로 대답을 못해 주었다. 혹시라도 무안해 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전시실 앞에서 본인에게 어려운(?) 질문을 한 이쁜 커플에게 이 글을 보게 될 우연히 생겼으면 하는 바램이다. 자신들이 한 질문에 대해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답을 얻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고맙게도 그 커플은 나를 타임머신에 태워 30여년 전의 어느 날로 보내주었다. 장학퀴즈 월말결선 마지막 문제를 차인태 아나운서가 내고 있었다. “다음 시를 듣고 작가와 작품명을 맞추세요…” 그때 정답이 ‘김춘수’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었다. 정말 기적 같은 순간이었다. 그 한 문제로 월말결선의 장원(그 당시엔 ‘월장원’이라고 했었다)이 뒤바뀌는 찰나(刹那)였다. 세파에 찌들고 젊은 날의 초상처럼 여겼던 수많은 아름다운 추억들이 내게서 아련해진 것 조차도 모르고 살아 온 본인에게 그날의 추억과 감동을 다시 선사해 준 아름다운 커플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란 시를 이곳을 통해서 지면으로 나마 전해 주고 싶다…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三月)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정맥(靜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정맥(靜脈)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數千數萬)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삼월(三月)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비고: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란 제목의 소설(박상우 著, 1993)도 있다.


※ 참고문헌:
ㆍ“Chagall: A Biography”, Jackie Wullschlager, Knopf, 2008.10.21.
ㆍ“Chagall: Love and Exile”, Jackie Wullschlager, Allen Lane, 2008.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