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도시 ··· 바르샤바
바르샤바 시내의 구시가지 시장광장(Market square)에 들어서면 시렌카(Syrenka)라는
인어 형상의 동상을 볼 수 있다. 어둠이 광장에 내려앉는
순간 주변 건물들의 창문을 통해 쏟아져 내리는 은은한 붉은 불빛들이 어우려져 인어 동상은 이상하리 만치 가슴 시리게 보인다. “아주
먼옛날 비스와(폴란드어: Wisła, 카슈브어: Visla, 독일어: Weichsel, Vistula) 강 근처에는 갈대숲이 우거져 물고기들이 아주 많이 살았다고 한다.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 가던 바르(War)라고
하는 젊은 어부가 어느 날 물고기 대신 아름다운 인어(Sawa)를
잡게 되었는데, 이 어부는 그가 잡은 샤바(Sawa)라는
이름을 가진 인어의 아름다운 미모에 한순간에 마음을 빼았기게 되었다. 결국
둘은 부부의 연을 맺고 자식을 낳아 행복하게 살았지만,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샤바는 자신의 고향인 물속으로 떠나 버렸다. 샤바가
떠난 빈자리는 바르와 그의 자식들의 눈물로 가득 채워졌다고 한다." 자신이
잡은 인어를 사랑하게 된 어부의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폴란드인들은 폴란드 수도의 이름을 『바르샤바(Warsaw)』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국토의
면적(한반도의 약 1.4배), 인구수, 단일민족에
단일언어 사용, 외세 침략을 많이 받은 것, 타민족에
의해 국토가 점령당했던 것 등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이 참으로 많은 폴란드는 우리나라의 「선녀와 나무꾼」이라는 전설과도 아주 흡사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어서 그런지 첫 방문부터 편안함으로 다가왔었다. 전혀
날설지 않은 문화가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있는 도시이다.


14세기
때부터 만들어졌다는 인어 상은 바르샤바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되었고, 지금은
그들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상징물이 되었다. 사실, 바르샤바에서는 버스나 전차 그리고 고풍스러운 건물에서 쉽게 인어 상을 발견할 수 있다. 칼과 방패를 든 인어 상은 한마디로 고단한 폴란드의 역사를 간접적으로 보여 주는 것 같다. 외부의 침략과 수탈에 저항하는 바르샤바인들의 강한 자유 정신을 느낄 수 있는 한 대목인 것 같다. 매서운 바람을 가르는 칼과 억센 압제에도 굴하지 않는 방패 정신이 바로 바르샤바를 지켜 내고 지켜 나갈
그들의 강인한 현재의 모습이라고 한다.


폐허
위에 희망을 세운 도시 ··· 바르샤바
폴란드는 10세기
후반에 세워져 15~16세기 야겔로(Jagello) 왕조
때 전성기를 맞는다. 하지만 이도 잠깐 폴란드는 1795년에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Preussen)에 의해 국토가 각각 분할된 후 1918년
독립국가로 재기할 때까지 지도상에서 사라지는 불행을 겪었다. 또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폴란드는 독일과 러시아에 의해 동서로 분할되는 운명을 맞았다. 이루지 못한 사랑의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 비운의 도시 바르샤바는 전쟁으로 인해 폐허로 변했고, 그들에게 남겨진 것은 가난과 전쟁의 상처뿐이었다. 그러나
민족성이 강한 폴란드인들은 2차 세계대전으로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된 바르샤바를 정성을
다해 다시 세우기 시작하여,
1988년 16~17세기
바로크와 고딕양식으로 바르샤바 왕궁을 비롯해 구시가지를 완전히 복원하는데 성공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던 폐허의 잿더미 위에 희망을 새로 세운 것이었다. 구시가지(Old town)와 신시가지(New Town), 크라코프 교외(Krakowskie Przedmieście) 거리
및 신세계 거리(Nowy
Świat) 등 바르샤바의 역사지구는 198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구소련이 붕괴되자 1989년
2월 민주화와 자유화 물결이 일어난 폴란드는 현재 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받아들여 경제발전과 함께 폴란드
공화국 재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크라코프 교외(Krakowskie Przedmieście)거리가
막 끝나는 곳에 바르샤바를 상징하는 옛 왕궁과 복원된 구시가지 광장이 펼쳐져 있으며, 왕궁을
지나 작은 골목길을 들어서면 바로크 양식,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집들과 직사각형의 광장이 있다. 사실
구시가지를 포함하여 신시가지와 거의 모든 바르샤바의 도시는 전 후에 복구한 것이다. 유럽의
주요도시로 유럽 문화의 중심에 있으며 "오래된
파리"
또는 "두 번째 파리"로
약 300여년 동안 알려져 있던 바르샤바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에 의해 도시의 거의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며 인구의 2/3가
희생되었다고 한다. 전후 폐허 위에 도시를 본래 모습으로 복원한 폴란드인들의 노력은 실로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심지어 벽에 금이 간 것까지도 그대로 복원을 해 놓았다고 한다. 현재 바르샤바의 북부에 있는 구시가지와 그 북쪽에 있는 신시가지는 시민들에 의해 벽돌 한장까지도 충실하게
재현되었다고 한다.





쇼팽의
선율이 흐르는 도시 ··· 바르샤바
바르샤바는 쇼팽(Fryderyk Franciszek Chopin,
1810.3.1~1849.10.17)의 고향이다. 어둠이 내려 앉은 겨울 밤, 쇼팽(Fryderyk
Franciszek Chopin)의 아름다운 피아노의 선율이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몽롱하게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낭만이라는 이름으로 촉촉히 적셔주는 도시가 바로 바르샤바이다. 흑백
건반에서 빚어낸는 아름다운 쇼팽의 야상곡(Nocturnes)은
여행에 지치고 예술에 목말라 하는 여행객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준다. 섬섬옥수(纖纖玉手)에서 만들어 내는 다양한 높낮이의 화음은 감성의 영혼을 달래 주기에 충분하리 만치 달콤하다. 겨울날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담벼락에 매달려 있는 담쟁이 넝쿨 만큼이나 가련하면서도 애달픈 선율, 바로 소심하고 마음이 여린 쇼팽의 선율이 코끝을 시리게 한다.





바르샤바의 구시가지 크라코프 교외(Krakowskie Przedmieście) 거리의
끝에는 쇼팽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바르샤바 대학교(Uniwersytet Warszawski)와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상이 서 있는 성십자가교회(Kościół świętokrzyski; Holy Cross Church, Warsaw)가 서로 길 건너편에 마주하고 있다. 성십자가교회는
폴란드가 낳은 세계적인 천재 작곡가인 쇼팽의 심장이 묻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20세의
나이에 조국 폴란드를 등지고 아버지의 나라 프랑스로 간 쇼팽이 39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게 되자, 폴란드인들은 그의 유해를 그가 삶을 마감한 프랑스에서 조국 폴란드로 가져오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한
뜻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게 되자, 쇼팽의 여동생은
파리를 방문해 쇼팽의 심장만을 가져와 성십자가교회의 본당 중앙 왼쪽 돌기둥 아래에 묻었고, 이
기둥에 쇼팽의 영혼이 잠들어 있다는 비명(碑銘)을 새겨서 그를 아끼는 바르샤바인들과 전세계의 방문객들의 매일같이 이어지는 사랑의 꽃 행렬을 받고 있다. 이 교회에서 발길을 쉽게 돌리기 어려운 것은 쇼팽의 심장이 묻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바르샤바 하늘에 함박눈이 소리없이 내리기 시작하면 쇼팽의 야상곡이 귓가에 맴돈다. 이루지 못한 사랑과 주변 강대국의 끊임없는 약탈과 침략으로 피폐(疲弊)해진 국민들의 서럽고 가슴저린 사연을 쇼팽이 음악을 통해서 의로하는 듯하다.


예술적
매력과 과학적 채취가 물씬 풍기는 도시 ··· 바르샤바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2.19~1543.5.24),퀴리 부인(Marie Curie, 1867.11.7~1934.7.4),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hn Paul II,
1920.5.18~2005.4.2) 등의 인물들이 바르샤바와 관련되어서인지, 쇼팽의 환상적인 피아노 선율에 의한 것인지는 몰라도 흔히 방문하게 되는 유럽의 여러 나라들 가운데 변방에
속하는 폴란드의 바르샤바는 그리 친숙한 도시는 아니었지만 예술적 매력과 과학적 채취가 물씬 풍기는 도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