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에게 바라지 않고 버림없이 껴안는 지고지순한 그 사랑, 아버지…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에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사무엘하 18장 33절에 기록된 다윗의 절규다. 압살롬이 누구인가? 다윗의 아들인 그는 다윗을 배반하고 반역을 일으킨다. 다윗은 압살롬의 추격에 맨발로 도망가야 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역시 아버지였다.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에 다윗은 목 놓아 울었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라고
부르짖는 다윗의 절규가 들리는 듯하다. 대역죄인 압살롬을 위해 국가적인 애도 기간까지 정했다. 이것이 속 깊은 아버지의 정이다. 다윗의 사랑은 '맹렬한 사랑'(Tough Love)이었다.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배웠다. 그는 압살롬뿐 아니라 아마사와 시므이, 므비보셋
등 여러 사람에게 상황을 뛰어넘는 용서를 베풀었다. 다윗이 그런 사랑과 용서의 행동을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바로 하늘 아버지인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무조건적인 맹렬한 사랑을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아버지의
이미지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성경 속 아버지의 사랑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상징이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도저히 인간의 필설(筆舌)로는 묘사할 수 없다.
그래서 성경은 다양한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서 절대자 하나님의 사랑을 맛 보여준다. 아버지와
아들은 친밀하지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가 작동되는 긴장의 관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긴장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결국은 용해된다. 언제나
긴장의 용해는 아버지로부터 시작된다. 물론 사울왕과 요나단과 같이 어긋난 부자지간의 모습도 나오지만
전체 성경에 흐르는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맥락과는 동떨어진 곁가지일 뿐이다.
창세기 22장은 아버지와 아들의 절대적 신뢰관계를 보여준다. 아브라함은 독자(獨子)를 번제(燔祭)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청천벽력 같은 명령을 받는다. 아브라함은 하늘 아버지를 신뢰했다. 어떻게 그 신뢰가 가능한가? 핵심은 바로 22장 초입부의 ‘그
일이 있은 이후에’다. ‘그 일’은 어떤 일인가? 하나님과 자신과의 무수한 그 일을 통해서 아브라함은
하늘 아버지야말로 자신의 인생에 신실하신 분이라는 확신을 하게 됐다. 그래서 그는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에 요동치 않고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로서
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하나님은 명하신다. “네 아들, 네가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물로 바쳐라.” 아들, 사랑, 독자, 번제물
등 하나님이 쓰신 단어 하나하나는 비수와 같이 아브라함의 마음에 박혔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순종했다. 이삭도 아버지의 행동에 순종했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하나님과 아브라함, 이삭의 관계에 요동치 않는 신뢰가 형성됐다.
유대인들이 세계에
흩어지면서도 4,000년 동안 유대감을 간직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때문이다. 신명기 6장 4절부터 9절까지 보면 쉐마(‘들으라’라는
히브리어)가 나온다. 아버지와 아들과 손자들은 이 쉐마의
말씀을 하루 두 차례씩 외운다. 이들은 매일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주 하나님을 사랑하겠다고 다짐한다. 하늘 아버지에 대한 충성 맹약이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산자의 하나님인 것과 같이 자신들도 살아 있는 아버지 하나님의 날개 안에 거하기를 소망한 것이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아버지 역시 기다리는 분이시다. 다함이 없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인 분이다. 그에게는 아들의 조건과 상황은 상관없었다. 아들에 대한 주위의 비난도 들리지 않았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아들’ 그 자체뿐이었다. 다른
것은 필요 없었다. 집 떠난 아들을 생각하며 동구 밖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늙은 아버지를 상상해 보라.
사실 인간성과
부성이 말살된 현대 사회에서 이런 탕자의 아버지, 압살롬의 아버지는 쉽게 보기 힘들지 모른다. 그러니 하늘 아버지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깨닫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기억하자. 우리 하늘 아버지는 탕자의 아버지와 다윗, 아브라함보다도
훨씬 더 절절하고 맹렬한 사랑을 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그분의 사랑은 끝이 없다. 그분은 지금도 이 땅의 자녀들을 맹렬하게 쫓아다니시며 말한다. “얘들아, 내 사랑에 거하라. 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단다. 내게 오거라.”
로마서 8장 32절에 하늘 아버지로부터 올 선물이 기록되어 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해 내주신 분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거저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이분이 바로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신 하늘 아버지다. 우리는 그의 아들이요, 딸이다. 얼마나 놀라운 약속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