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혼(Dead Souls, 원제; Mertvye Dushi)』이 출판된 지 4년이 지난 1927년, 볼라르는 『라퐁텐 우화(Fables of La Fontaine)』의 선집 삽화를 샤갈에게 의뢰했다. 『나의 삶(My Life)』과 『죽은 혼(Dead Souls)』에서 표현되었던 날카로운 윤곽과 전반적으로 어두웠던 색조는 그의 첫 프랑스 출판물에서 부드러운 곡선과 세밀함으로 표현되었다. 『라퐁텐 우화(Fables of La Fontaine)』는 샤갈의 판화 전작 중 중요하면서도 야심적인 작품이며 그 주제와 모티브인 농부, 동물, 시골 풍경 및 건물들은 그의 전 작품에서 반복해서 다루어진다.
본질적으로 풍자적인 이 프랑스 작품을 재해석하기 위해, 이민자인 샤갈은 자신의 새 고향인 시골을 자신의 작품에 그리면서 프랑스 문화와 자신을 동화시키려 했다. 그의 과슈(Gouache) 습작은 우화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그린 삽화가 아니라 줄거리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이었다. 샤갈이 학생 시절부터 작품에 주로 그렸던 비테프스크(Vitebsk)의 시골 동물들이 17세기의 풍자적인 고전 작품을 장식하였으며, 그 동물들은 차례로 어리석게 행동했다 지혜롭게 행동하며, 잔인하게 행동했다 자비롭게 행동하며, 편견을 가지고 행했다가 이해심을 가지고 행동한다. 이렇게 샤갈(Marc Chagall)과 라퐁텐(La Fontaine)의 상상력을 한데 묶은 것은 참으로 자연스러운 조합이었다.
『전쟁터로 떠나는 사자(The Lion Going off to War, 1927~1930)』,
『사자 가죽을 입은 나귀(The Ass Dressed in the Lion's Skin, 1927~1930)』,
『주인의 저녁을 목에 걸고 운반하는 개(The Dog who carries his Master's Supper Around his Neck, 1927~1930)』,
『사자와 사냥꾼(The Lion and the Hunter, 1927~1930)』,
『물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는 수사슴(The Stag Seeing Himself in the Water, 1927~1930)』,
『젊은 과부(The Young Widow, 1927~1930)』,
『시골남자와 뱀(The Countryman and the Serpent, 1927~1930)』,
『사기꾼(The Charlatan, 1927~1930)』,
『수렁에 빠진 짐마차꾼(The Carter in the Mire, 1927~1930)』,
『말과 나귀(The Horse and the Ass, 1927~1930)』,
『두 마리의 노새(The Two Mules, 1927~1930)』,
『사자 앞에 어린 암소와 염소, 양(The Heifer, the Goat, and the Sheep, in Company with the Lion, 1927~1930)』,
『죽음과 나무꾼(Death and the Woodsman, 1927~1930)』,
『여우와 황새(The Fox and the Stork, 1927~1930)』,
『소년과 교사(The Boy and the Schoolmaster, 1927~1930)』,
『수탉과 진주(The Cock and the Pearl, 1927~1930)』,
『오크나무와 갈대(The Oak and the Reed, 1927~1930)』,
『원숭이 앞에서 여우에게 항변하는 늑대(The Wolf Pleading Against the Fox in Front of the Monkey, 1927~1930)』,
『두 마리 황소와 개구리(The Two Bulls and the Frog, 1927~1930)』,
『화살 맞은 새(The Bird Wounded by an Arrow, 1927~1930)』,
『암캐와 그녀의 친구(The Bitch and her Friend, 1927~1930)』,
『독수리와 딱정벌레(The Eagle and the Beetle, 1927~1930)』,
『사자와 각다귀(he Lion and the Gnat, 1927~1930)』,
『솜을 진 나귀와 소금을 진 나귀(The Ass Loaded with Sponges and the Ass Loaded with Salt, 1927~1930)』,
『사자와 생쥐(The Lion and the Rat, 1927~1930)』,
『토끼와 개구리(The Hare and the Frogs, 1927~1930)』,
『수탉과 여우(The Cock and the Fox, 1927~1930)』,
『독수리 흉내를 내는 까마귀(The Crow who Wanted to Imitate the Eagle, 1927~1930)』,
『주노에게 항의하는 공작(The Peacock who Complained to Juno, 1927~1930)』,
『여자가 된 고양이(The Cat Metamorphosed into a Woman, 1927~1930)』
물에 타서 사용하기 때문에 투명화 효과도 낼 수 있고 수채화와 병용도 가능하며, 두텁게 발라 마티에르(Matiere)도 낼 수 있어 현대 화가들이 많이 사용하는 재료이다. 색조는 선명하지만 유화와 같은 광택이 없으며 가라앉은 부드러운 효과를 낸다. 마르면 젖었을 때보다 밝은 색조로 변한다. 평평하고 균일한 색면을 원할 경우에 효과적이며, 종이뿐만 아니라 각종 경질 재료에도 사용할 수 있다.
모빌(Mobile)과 스태빌(Stabile)로 유명한 미국의 조각가인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Stirling Calder, 1898.7.22~1976.11.11)는 과슈 애용자였으며, 20세기 미술가인 제니퍼 바틀렛(Jennifer Bartlett, 1941~), 신표현주의의 지그마르 폴케(Sigmar Polke, 1941~) 등도 수채물감과 과슈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 마티에르(Matiere)
마티에르(Matiere)란 질감(質感)을 뜻한다. 금속, 목재, 광물 따위의 물질이나 재료라는 뜻에서 물질이 지니고 있는 재질, 질감의 뜻으로 확대되었다. 흔히 유화물감의 다양한 기법에 의해 나타나는데, 물감의 겹침, 광택, 필촉의 흔적, 팔레트나이프(palette knife)의 효과 등에 의해 풍부한 표현력을 얻는다. 마티에르에 대한 관심은 근대미술 이후 높아졌고, 특히 제2차 세계대전 후 앵포르멜(Informel) 화가들이 안료를 화면에 두텁게 바르거나 모래 등 이물질을 섞어 두꺼운 벽면처럼 느끼게 해주는 효과를 사용하곤 하였다.
※ 앵포르멜(Informel)
앵포르멜(Informel)은 원래 부정형 또는 비정형의 뜻. 앵포르멜 미술은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정형화되고 아카데미즘화한 추상 특히 기하학적 추상에 대해 반발하여 일어난 것으로서, 미리 계획된 구성을 거부하고 자발적이며 주관적으로 표현하는 경향을 말한다.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에 상응하는 동시대 유럽 미술을 지칭하면서 시작된 말이고 서정추상이나 타시슴(Tachisme)과도 거의 혼용되고 있으나, 사실상 유사한 성격의 미술들을 전부 포괄하여 일명 뜨거운 추상 또는 부정형의 추상 전체를 양식적으로 대표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파리의 드루엥(Drouin) 화랑에서 열린 세 전시회를 통해 포트리에(Jean Fautrier, 1898~1964), 볼스(Wols, 1913~1951), 뒤뷔페(Jean Dubuffet, 1901~1985)는 앵포르멜 미술 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 1945년에 발표된 포트리에의 『인질(Otages)』전, 1946년 뒤뷔페의 『오트 파트(Haute Pâtes)』전, 1947년 볼스의 두번째 개인전이 그것이다. 이들은 가혹한 전쟁의 상황 속에서 자신의 체험을 기반으로 억압된 인간의 극한적인 정신을 다루었다. 이들은 구상과 추상을 불문하고 기존의 회화 개념 및 소재의 틀을 깨고 삶의 실존적인 모습을 표출하고자 했으나 소수의 문학가 및 화가에게 인정받았을 뿐이었다.
앵포르멜의 이념이 구체화된 것은 비평가 타피에(Michel Tapié)에 의해서였다. 그는 1951년 니나 도세(Nina Dausset) 갤러리에서 『대립된 격정Véhémences confrontées』을 시작으로 앵포르멜 추상 운동을 본격화했다. 여기에는 프랑스의 마티유(Georges Mathieu)와 브리앙(Camille Bryen), 독일의 볼스와 아르퉁(Hans Hartung), 캐나다의 리오펠(Jean-Paul Riopelle), 미국의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과 드 쿠닝(Willem De Kooning, 1904~1997) 등이 참가했다. 앵포르멜이란 명칭은 이듬해 6월 스튜디오 파케티(Faccheti)에서 열린 『앵포르멜이 의미하는 것(Significant de l’informel)』전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전시회의 제목은 구조주의 언어학자 소쉬르(Saussure)의 개념에서 따온 것으로 타피에는 ‘의미하는 것’과 ‘의미하지 않는 것’을 같은 위치에 놓고 비정형 속에서 의미를 찾고자 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