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신동과 천재 사이에 불가결한 연결요소는 없다. 신동의 대부분이 커서 흔히 천재라고 일컬어지는 매우 창의적인 성인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자녀가 주변의 다른 아이들 보다 모든 면에서 경쟁적으로는 앞서 있기를 바라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또한 한참 성장을 하고 있는 자신의 자녀를 오랜 기간 동안 관찰하면서 그들이 나타내는 특정 면모로 인하여 신동이라 생각하기도 할 것이다. 적어도 어떤 분야에서 만큼은 주변의 평범한 아이들과는 다른 면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심지어 요즘 흔히 말하는 영재를 만드는 작업에 매진하는 부모들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자녀가 유년시절에 신동이라고 모두 천재로 성장하여 성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사랑하는 자녀가 유년 시절에만 신동 소리를 듣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세상의 미래를 짊어진 우리의 자녀들이 유년 시절의 뛰어 넘어서도 남다른 특성과 재질을 더욱 발전시켜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을까? 성장한 천재와 신동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신동과 천재 간의 연결고리를 양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표면상 도움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신동이 성인이 되어서도 천재 소리를 듣는 비율이 얼마나 되고 어린 시절 신동 소리를 들은 천재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해 할 수 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신동과 천재를 정의하는 객관적 방법이 있을 때에 비로서 가능한 이야기이다. 애석하게도 아직은 이런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천재라고 부를 때, 그들은 개인의 능력이나 다른 특질을 보지 않고 그 사람의 업적을 본다(Howe, 1994). 천재는 ‘성공적인 사람’ 혹은 ‘수상자’와 같은 용어로 제한적으로 정의될 수 있다. 이것은 개인의 특기만큼이나 운에 의해서도 결정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천재의 범위 안에 드는 사람에 대한 보편적 기준이 전무(全無)한 것이다.
본인은 4명의 천재들의 유년기에 대한 패턴을 분석하여 신동과 천재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는 작업을 하였다. 그들의 유년기 패턴을 정확히 분석하기 위해서 그들의 전기적 이야기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동시에 심리학으로 과학적 접근을 하였다. 적은 수의 신동과 평범한 아이들을 비교 고찰하고 그들이 초년 시절에 겪는 다른 경험을 자세히 조사하는 방법은, 양적 분석의 조잡성으로는 구별해 낼 수 없던 일련의 사건들을 식별할 수 있었다. 자녀를 가장 많은 시간을 갖고 면밀히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어느 전문가도 아닌 바로 우리들 자신인 부모들이므로 이 글의 결론은 부모님들에게 맡긴다.
이 글이 자녀를 지극히 사랑하는 부모들에게 “어려서 신동으로 불릴 만큼 뛰어난 모습을 가진 자녀가 성인이 되어서도 천재성을 나타내는 성취를 이루도록 준비하는데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혹은 별다른 특이함 없이 평범한 자녀가 성장하면서 천재성을 발현(發現)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에 대한 논의와 통찰력을 제공해 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작성되었다. 자녀를 위해 땀 흘리고 모든 것을 희생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부모님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1.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제임스 밀은 엄격한 학자로서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과 경제학자인 데이비드 리카르도(David Richardo)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고 실용주의 전통의 개척자였다. 그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아들이 그의 일을 잇도록 하였으며, 아들의 어린 시절의 업적을 이 교육 프로그램의 불가결한 결과로 간주하였다. 그래서 그는 아들의 지적 발달이 예외적으로 뛰어나다는 생각을 전혀 갖지 못하였다.
존 스튜어트 밀은 그의 유명한 『자서전(Autobiography, 1873년 첫 출판)』에서 그의 초기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이것은 여느 자서전처럼 솔직하고 상세하고 정확한 이야기다. 밀은 그의 아버지가 그의 교육에 힘을 쏟았으며, 유년 시절부터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은 배움에 쏟았다고 밝힌다. 저명하고 부지런한 학자로서 제임스 밀은 아들의 자존감과 정서 발달은 엄격한 체계에서 거의 무시되었지만, 그의 아들이 받은 지적 교육의 기초가 아주 우수했음을 확인했다. 그는 아들에게 동기를 심어 주고 격려하는 데는 신경을 별로 쓰지 않았지만, 자기 자신이 얼마나 실망했는지, 아들이 얼마나 느리고 게으르게 공부하는지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강조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존 스튜어트 밀은 남들에게 신동으로 생각되었지만, 그의 눈에는 멍청한 아이처럼 느껴졌다.
아이의 정서적 욕구 만족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를 가진 현대의 독자들에게 존 스튜어트 밀의 어린 시절과 교육의 결과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 젊은 시절 그의 지적 능력은 훌륭했다. 그는 남달리 박식하고, 고급 교육을 받았고, 남부럽지 않은 분석적 기술과 남의 주장을 상세히 관찰하고 비평할 줄 아는 능력을 소유하였고, 자기 자신의 추상적 생각을 발전시킬 줄 알았다. 그러나 생산적이고 충만한 삶을 사는 데에는 비참할 정도로 무능력했다. 지배적 성향의 아버지가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성인을 만드는데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사회적 기술은 아주 뒤떨어졌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신의 삶의 방향을 자신이 선택했다는 생각이 없었고, 사람에게 동기를 주고 활동하게 하는 개인적인 야심이 없었다. 그래서 존은 영리한 신동에서 그의 지적 능력을 활용할 성숙함과 자신감을 가진 자주적 성인으로 변화하는 것을 매우 어렵게 여겼다. 존은 20대 초반에 긴 위기를 경험하고서 궁극적으로 이런 장래들의 대부분을 극복하였다. 이것은 수년간 지속된 심각한 붕괴로 특징지어졌는데, 그는 이 기간 동안 우울증을 겪고 삶에 무력감을 느꼈다. 흥미롭게도 그는 부분적으로는 윌리엄 워즈위스(William Wordsworth)의 시에 흥미를 느끼면서 회복할 수 있었고, 자신의 지적인 관심과는 반대되는 낭만적 서정성에 열정을 느꼈다.
존은 자신을 우수한 지적 능력을 가진 아버지가 의도한 대로 만들어진 천재라고 인식했다. 그의 『자서전』은 이런 훈련의 유익함과 위험성 모두에 대해 통찰력 있는 이야기를 제공해 준다. 이런 교육의 부정적 결과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밀의 평범하지 않은 유년의 경험들이 그가 신동이 되도록 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성인이 되어서 수많은 학문적 업적을 이루도록 만든 지적 자원을 제공하였다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Howe, 1990). 우수한 유년 시절의 교육이 신동으로서의 등장에 충분조건이 아니었다면 필요조건이었다고 믿을 확실한 이유가 있다. 그의 삶에서 늦게까지 지적으로 준비시키는 과정이 없었다면 이렇게 박식하고 유능한 분석적 사상가가 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남다른 유년기의 발달은 존에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비슷한 상황이 적용될 수 있는 수많은 전문 분야가 있다. 예를 들어, 유년기의 적절한 시기에 시작하지 못하면 훌륭한 음악가가 되기는 힘들다. 부분적으로 보면 성인이 되어서 시작한 사람이 막대한 시간을 들여 기본기를 갖추고 또 유년 시절에 시작한 사람들을 따라잡기는 힘들다. 성공한 음악가는 성인이 될 때까지 1만 시간 가까이를 연습하고 훈련하는데 이미 쏟는다(Ericsson 등 1993; Sloboda 등 1996). 클래식 음악가는 막대한 시간의 훈련과 연습을 어린 시절에 해 놓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다. 젊은 음악가들은 결과적으로 많은 시간을 그들의 악기에 쏟아 붓는다. 그리고 기준이 매우 높아 좀처럼 감탄하지 않는 성인들조차도 그들을 신동이라고 부르는 것을 행복하게 생각한다.
막대한 시간의 조기훈련은 다른 분야에서는 덜 중요할 수 있다. 그럼에도 어떤 영역에서나 기술을 쌓기 위해 의도적 훈련을 하는 것은 필요하다. 특별한 훈련을 거치지 않고 성인에 다다른 사람은 상당한 불리함을 안을 것이다. 따라잡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매우 힘들 것이다. 수학자들, 과학자들, 운동선수들 중에서 성공한 개인은 유년기가 끝나기 전에 고도로 유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본적으로 성인은 훈련에 시간을 들여 고급 수준을 획득하는 것이 가능하더라도 완전히 거기에 몰입해서 살기는 힘들다.
그렇지만 유년기에 상당한 훈련이 필요하더라도 가장 큰 발전을 보인 아이들이 가장 성공적인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로렌 소스니악(Lauren Sosniak, 1985)은 가장 성공적인 30대 초반의 미국 클래식 피아노 연주가들을 인터뷰했다. 여기서 그녀는 그들 모두가 유년기 동안 훈련을 열심히 했고, 어린 나이에 훌륭한 연주가가 되었음을 발견했다. 그렇지만 소수만이 콘서트 연주가로서의 직업을 열망했던 다른 수백 명의 젊은 사람들보다 성인이 되어서도 더 성공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신동으로 간주되는 특정 아이가 후에 큰 성공을 거둘 확률을 높일 수 있으나, 그 연결고리는 신동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에게 신동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것은 그 아이가 어린 나이에 가치 있는 시작을 하였고, 이미 어린 나이에 관련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기술을 획득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옳다면, 어린 시절 신동으로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 중에서도 나중에 궁극적으로 천재로 인정받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2. 찰스 다윈(Charles Darwin)
다윈은 어려서부터 열렬한 수집가였으며, 그의 수집활동은 박물학에 관련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자체로 경이로운 것이 아니었으며, 열정적이었지만 특별한 재능은 보이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과학을 가르치지도 않았고, 그의 박물학에 대한 지대한 관심에 대하여 교장 선생님은 단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못마땅하게 여겼다. 교장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의 수집은 점차적으로 진지한 취미로 발전하였다.
다윈은 운 좋게도 과학과 관련된 취미를 누릴 수 있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랄 수 있었다. 그의 형은 화학실험을 도와 참여하도록 허락하였다. 이를 통해 그는 학교에서 제공하지 않은 과학교육의 기초를 획득하였다. 그의 가족은 부유했기 때문에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그는 휴일이면 걸어서 새로운 환경과 낯선 식물과 동물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쳤다면, 다윈은 그가 싫어하는 학업의 필수적 경쟁적 요소들로 마음이 채워졌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박물학에 대한 그의 흥미는 유년 시절에 소멸되었을지도 모른다.
천진한 수집가에서 열정적 십대의 자연주의자이자 유능한 젊은 과학자로의 변신은 점진적인 발전이었다. 그 동안 시야가 넓어지면서 지식과 기술은 점차적으로 증가하였다. 그는 16세기에 에든버러 대학의 학생이 되었으며, 그를 도울 수 있는 전문적 생물학자와 기타 과학자들과 접촉을 하게 되었다. 그가 케임브리지 대학에 진학해서도 이런 행운은 계속되었으며, 몇 가지 요인이 함께 작용하였다. 그는 명문가에서 출생하였으며, 존경 받는 과학사상가인 에라스무스 다윈(Erasmus Darwin)의 손자로 알려졌다. 그를 도왔던 생물학자들은 그의 열정과 관심사에 대한 진지함에 끌렸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윈이 다른 사람들과 사이가 좋았으며 우정을 발전시켰다는 데 있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존 스튜어트 밀과 현저하게 차이가 있다. 사실 다윈이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는 능력과 그들의 존경심을 얻는 능력은 그의 과학적 업적에 있어 대단히 중요하다. 후에 그는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이론을 위한 경험적 지지를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출처에서 막대한 양의 증거를 수집해야 했다. 그때 그는 각계 각층의 수많은 수집가들로부터 정보를 협조 받아 이용할 수 있었다. 그의 매력을 이용하여 혼자서는 모을 수 없는 과학자료를 모았다. 이와 유사하게 유년 시절부터 발전시켜 온(친근하지 못했던 존 스튜어트 밀처럼 방해 받지 않고) 사회적, 대인적 기술과 우정을 키우는 능력은 어려운 사람들로부터 협력을 얻을 수 있게 하였다. 여기에는 처음에 그가 영국을 떠나 비글호(HMS Beagle)를 타고 세계일주를 하려는 결정에 극구 반대했던 아버지도 포함된다. 또 다른 사람은 비글호의 선장인 로버트 피츠로이(Robert Fitzroy)로 변덕스럽고 욱하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다윈은 근 6년간의 좁은 배에서의 생활에도 불구하고 그와 친근하게 지냈다(Sulloway, 1985).
그러므로 다윈의 업적은 그의 지적 능력만큼이나 거의 그의 인간성에 의존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가 신동이었다면 그의 지적 능력이 인간성과 사회성 대신 발달하여 능가했을지도 모른다. 다윈은 믿을 수 있는 인간이라는 평판과 이러한 뛰어난 대인관계 때문에 나중에 다시 도움이 필요할 때 아주 효과적으로 그러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3.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
아마도 물질적으로 그다지 축복을 받지 않은 아이들은 여전히 일찍 시작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또 다른 위대한 과학자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의 경우는 다르다. 페러데이는 1791년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3세의 나이에 런던의 작은 회사에서 일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 두었다. 여기서 그는 책 제본업자의 도제로 고용되었다(Cantor, 1991; Gooding과 Jones, 1985; Jones, 1870). 19세기의 위대한 과학자로서 그리 좋은 시작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패러데이에게는 중요한 장점이 있었다. 그는 지적으로 호기심이 많았고 배우려는 열의가 있었다. 비록 제책업이 과학을 위해 특별히 좋은 실습적인 경험일 수는 없었지만, 그는 책을 많이 볼 수 있었고 문학자들, 지적인 사람들과 자주 접촉을 할 수 있었다. 또한 그의 고용자가 친절해서 직원들에게 많은 도움과 격려를 해 주는 행운을 얻었다. 그리고 그의 가족은 자조의 미덕과 가족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종파의 신자들이었다. 그의 가족은 대부분의 가족 구성원이 평생 동안 서로 긴밀한 접촉을 유지하고 서로 도와주었다는 사실에서 드러나듯 서로 가까웠고 또 따뜻했다.
젊은 마이클 패러데이가 직장에서 받은 지적 자극과 서로 돕고 의지하는 따뜻한 가정의 결합은 젊은이들이 성공하는데 특히 효과적이라고 현대 연구는 밝힌다. 예를 들어,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lhalyi)와 그의 동료들이 청소년들의 학습습관과 시간관리를 조사하였는데,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고도의 능력으로의 발달에 필요한 활동에 참가하여 공부하는 것을 힘들어 했다. 그러나 소수의 젊은이들은 그들이 공부를 좋아하고, 그들의 시간을 매우 효율적으로 사용한다고 보고했다. 이 바람직한 젊은이들은 대부분 교육적으로 자극을 받을 뿐 아니라 비교적 조직적이고 따뜻한 가정의 출신들이었다. 이 청소년들은 서로를 돕고 각자의 책임이 있는 집안 출신으로서 그들의 삶과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잘 조절하는 법을 배운다. 그렇게 함으로써 좋은 업무습관을 획득하고, 형제자매들과 다투거나 삶이 공평하지 않다고 불평하거나 집안일 담당을 두고 싸우는 등 시간 낭비하는 데 하루를 보내지 않는다.
이런 따뜻한 배경과 지적 자극을 받아 패러데이가 비교적 제한을 받기는 하였으나, 이것이 패러데이가 과학자가 되는 데 오늘날의 교육과정처럼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패러데이의 시대에는 고급 교육이라는 것이 주로 고전적 교육에 기초하였기 때문에 그는 아마 학교에서 교육과정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과학에 대한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학교교육을 받는 대신에 그는 강의와 스터디 그룹에 참석해서 책으로부터 배우는 것을 보충하고 독학하느라 심한 고통을 겪었다. 학생으로서 그는 철저하고 성실할 뿐 아니라 매우 열정적이고 조직적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지만 그리 빠른 향상을 보이지는 못하였다. 패러데이의 특유한 점은 결단력과 고집이었다. 그는 전일제로 일하면서도 공부 스케줄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는 운 좋게도 아이작 와트(Isaac Watt)의 『정신의 개선(The Improvement of the Mind, 1801)』이란 훌륭한 학습 가이드를 알게 되었다. 일반 독자들을 위한 자조적 서적의 오래된 전통의 베스트셀러였던 이 책은 어린 학생에게, 특히 독학을 하는 사람에게 영감과 조언을 가져다 주었다. 이 책은 읽기, 강의, 외국어 습득, 집중하기, 기억, 추론, 관찰, 대화로 배우기 같은 다양한 토픽에 대해 총 2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이작 와트는 학생들이 배움의 과정을 활발하고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것을 특히 강조하였다. 그의 책은 패러데이가 매일의 학습활동을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을 도왔고, 지식과 기술을 확장시킬 수 있는 방식을 잘 인식하도록 도왔다.
패러데이는 와트의 책을 읽었을 뿐 아니라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그 안의 조언을 따랐다. 예를 들어, 그는 강의에 참석하여 필기를 한 후 그의 지식의 공백을 메울 추가적 정보를 위해 필요한 책을 참고하여 다시 필기를 하고 그의 일을 확장시켰다. 다른 많은 성실한 젊은이들처럼, 패러데이는 자신에게 올지 모를 행운을 위해 스스로 준비하는데 힘썼다. 그 시간이 왔을 때, 즉 로얄 인스티튜트의 연구실에서 보조를 찾을 때, 그는 이미 유명한 화학자 험프리 데이비(Humphry Davy)가 자신의 존재를 안다고 확신했고 자신이 최선의 사람임을 확신했다.
4. 조지 스티븐슨(George Stephenson)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지니고 있는 불리한 조건들은 아주 가혹하다. 그리고 이런 어려움을 극복한 사람들은 그리 흔하지 않다. 그 중 하나가 조지 스티븐슨(George Stephenson, 1781~1848)이다. 스티븐슨은 철도 엔지니어였으며, 여행을 가능하게 만든 증기기관차 개발의 위대한 업적으로 천재로 인정받고 있다. 그가 성인이 되었을 때 디자인한 엔진들은 그가 태어났을 때에는 도저히 불가능했던 속도로 기관차를 달리게 하였다. 이런 개척적인 선구자적 업적 외에도 스티븐슨은 철도 선로의 디자인과 노선의 건설에 기여하였다. 그의 철도는 이전의 엔지니어들이 건널 수 없다고 생각했던 지형을 가로질렀고, 그는 세계 여러 지역의 철도 건설사들로부터 자문을 받았다.
조지 스티븐슨은 영국 북쪽 지방의 뉴캐슬에 가까운 한 광산 마을의 탄광 화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너무 가난해서 그의 여섯 자녀들을 학교에 보낼 수가 없었다. 스티븐슨은 어려서 공식적인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으나 목동으로 고용되었으며, 14세에 화부로 아버지를 돕는 일을 시작했다. 18세가 되어서야 읽기와 기초 산수 수업을 듣고 겨우 이름을 쓸 수 있었다. 그는 그가 일하던 탄광에서 12시간의 교대근무를 마치고, 일주일에 세 번 수업을 위해 근처 지역의 선생님 집에 들렀다.
조지 스티븐슨의 유년 시절은 연속적인 고난과의 투쟁이었다. 마이클 패러데이 같이 그는 남달리 야망이 있고 열정적이며 단호하였으나, 그의 장애물은 더 가혹했다. 그가 엔지니어 기술과 지식을 익혀야 하는 기간은 패러데이의 경우보다 훨씬 길었다. 패러데이는 스스로 20대 초반에 유망한 젊은 과학자로 기반을 잡았다. 반면에 스티븐슨은 30세가 넘어서까지 그의 능력을 펼쳐 보일 기회를 가질 만큼 자격 있고 숙련된 위치에 있지 못하였다.
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가 위대한 엔지니어가 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19세기 초반 엔지니어는 과학과 수학에의 의존도가 현대보다 낮았다. 스티븐슨은 자신의 일에 필요한 비교적 적은 양의 이론적 지식을 나중에야 얻을 수 있었고, 이 과정에서 그는 아들 로버트(Robert)의 도움을 받았다. 스티븐슨의 조기교육의 결여는 20년후 엔지니어가 되고 싶은 그에게 절망적이었다.
그의 발달과정에서 긍정적 영향 중 하나는 어려서부터 엔진에 대한 강렬한 흥미를 키웠다는 것이다. 청소년기에 탄광에서의 작업은 종종 원시적인 수준의 엔진을 포함했는데, 그는 그 작동을 연구할 기회를 충분히 가질 수 있었다. 그는 어려서 이를 관찰하고 모델을 만들었다. 후에 그는 작동하는 원리를 관찰하고 고장이 났을 때 수리를 하였으며,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는 일을 했다. 그런 과정에서 그는 초기 스팀엔진의 능력과 약점의 실제적 지식을 자세하게 갖추게 되었다. 예를 들어, 스티븐슨의 첫 전기 작가 사무엘 스마일스(Samuel Smiles, 1881)는 17세기에 그가 '플러그 맨'으로 고용되어 펌프엔진을 관장하게 되었다고 썼다. 이것은 비교적 숙련된 일이었는데, 이는 그가 엔진에 대한 흥미를 이미 인정받았기 때문이었다. 엔진에 심각한 고장이 생겼을 때, 보통의 일반적인 반응은 엔지니어 팀장을 찾는 것이었다. 그러나 스티븐슨은 다른 이들과 달랐다.
그는 스스로 근면하고 성공적으로 엔진과 기어를 공부하였다. 쉬는 시간에 청소와 다양한 부품을 이해할 목적으로 기계를 분해하여 그는 곧 작동의 조립과 모드에 대한 완전하고 실제적인 지식을 얻었으며, 탄광의 엔지니어를 부르는 일이 좀처럼 없었다. 그의 엔진은 그에게 애완동물이 되었고, 관찰하는 것에 지치지 않고 경탄을 하며 살피고 또 살폈다(Smiles, 1881).
그의 삶에서 이때 많은 불리한 점을 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스티븐슨은 훌륭하고 창의적인 엔지니어가 될 것처럼 보였다. 책임을 맡고 있던 엔진을 면밀히 관찰하는 것 외에 그는 어릴 적 취미였던 스팀엔진 모델을 조립하는 것을 적절하게 이용하였다. 그는 읽을 줄도 모르는 신문에 보고된 과학적 발견을 듣고 작은 실험을 통해 구상을 테스트하기 시작했다. 기계의 상세한 작동에 대한 날카로운 흥미, 이들의 작동에 신경을 쏟으면서 오는 기쁨, 부품들이 어떻게 함께 작동하는지에 대한 지치지 않은 흥미는 현재에도 기계 발명가들의 명백한 트레이드마크다. 사무엘 스마일스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스팀엔진의 지속적 움직임을 매일 자세하게 관찰하면서 생각하는 것은 그 자체가 창의적이고 사려 깊은 사람에게 교육이 된다. 그리고 철학자나 과학자가 아닌 노동자, 기계공, 엔지니어가 이 기계의 개선을 위해 행한 거의 모든 것이 성공적이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정말로 이것이 인간 정신의 고도의 능력이 기계적 특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마음을 쏟는 실용과학의 분야 중 하나인 것처럼 보일 것이다(Smiles, 1881).
19세기 초반의 엔지니어에게 이런 종류의 실용적 활동은 중요했다. 음악가나 체스 선수는 다른 분야의 전문가처럼 점차적으로 수천 시간의 훈련과 연습을 통해 기술을 연마한다. 스티븐슨의 마음은 엔진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그는 점차적으로 깊고 넓은 지식을 쌓았고, 이런 방식으로 우수한 과학적 이론적 지식을 가진 어떤 엔지니어도 따라갈 수 없는 실제적 기술을 습득했다. 비록 유년 시절 스티븐슨은 오늘날 창의적 업적을 이루기 위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육 기회가 거의 없다시피 하였지만, 엔지니어 기술을 습득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 경험이 있었다. 이런 경험들은 스팀역학 분야의 개척자이자 발명가에게 위대한 가치가 되었다.
※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5~1873.5): 영국의 경제학자·철학자·사회과학자·사상가. 초기에는 공리주의에 공명하였으나 후에 사상적으로 전환하여 종래의 공리주의적 자유론을 대신하여 인간 정신의 자유를 해설한 『자유론』을 저술하였다.
※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2~1882.4): 생물진화론을 정하여 뜻을 세운 영국의 생물학자이다. 해군측량선 비글호에 박물학자로서 승선하여, 남아메리카·남태평양의 여러 섬과 오스트레일리아 등을 항해·탐사했고 그 관찰기록을 『비글호 항해기』로 출판하여 진화론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1859년에 진화론에 관한 자료를 정리한 『종(種)의 기원(起原)』이라는 저작을 통해 진화사상을 공개 발표하였다.
※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9~1867.8): 영국의 화학자 ·물리학자. 벤젠 발견 등 실험화학상 뛰어난 연구를 하였고, 물리학의 전자기학 부분에서 여러 가지 전기의 동일성을 간파, 보편성을 가진 통일 개념으로서의 전기를 제창하였다. 그 외 ‘패러데이암흑부’, '패러데이효과', 반자성 발견 등 중요한 공헌이 많다.
※ 조지 스티븐슨(George Stephenson, 1781~1848): 영국의 증기기관차 발명가. 1824년 스톡턴∼달링턴 간의 세계 최초의 여객용 철도가 부설되어, 1825년 그의 공장에서 제작한 개량형 기관차 로커모션호를 달리게 함으로써 철도수송의 시대가 개막되었다.
※ 참고문헌 :
ㆍBelmont, J. M. 1978. Individual differences in memory: the case of normal and retarded development. In Aspects of memory, pp. 153-185. Methuen,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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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Cantor, G. 1991. Michael Faraday: sandemanian and scientist. Macmillan, Basingstoke.
ㆍColangelo, N., Assouline, S. G., Kerr, B., Huesman, R., & Johnson, D. 1993. Mechanical inventiveness: a three-phase study. In CIBA Foundation Symposium No 178: the origins and development of high ability, pp. 160-170. Wiley, Chichester.
ㆍCsikszentmihalyi, M., & Csikszentmihalyi, I. S. 1993. Family influences on the development of giftedness. In CIBA Foundation Symposium No 178: the origins and development of high ability, pp. 187-200. Wiley, Chiche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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