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October 12, 2013

제주 생명이 살아 숨을 쉬는 야생의 터전, 제주의 중산간 트레킹(Trekking)

가을이 깊어지면 제주 중산간의 들판은 바람보다 먼저 눕고, 지는 해에 인사하는 억새가 하얗게 물들인다. 변화 무쌍한 제주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야생의 터전, 제주의 중산간을 바다와 산사이에서 만났다.
제주 전역에 걸쳐 360여 개나 되는 오름은 제주도민의 삶의 터전이다. 한라산과 바다 사이에 위치한 중산간에는 아트막한 오름 군락이 만들어내는 능선이 너를 들판 위에 물결친다.
 
오름은 대부분 높이가 200~300m에 불과해 가볍게 산책하듯 오르기에 그만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작은 오름일지라도 저마다 멋과 개성을 간직하고 있다. 정상 분화구에 습지를 간직한 물영아리 오름(해발 508m)을 찾았다. 물영아리는 물이 있는 영스러운 산이라는 뜻의 제주 방언이다. 가을이 깊었는데도 여전히 푸름이 가시지 않은 삼나무 사이로 나 있는 880개의 나무 계단을 오르니 어머니 품에 폭 안겨 잠든 듯 고요한 습지에 이른다. 빗물이 고여 형성된 습지에는 멸종 위기의 물장군을 비롯한 곤충 47종과 습지식물 210여 종이 자생한다. 온통 연녹색 습지식물로 뒤덮인 분화구는 작은 동물들의 터전이자, 어마어마한 양의 산소를 저장해 이산화탄소가 대기로 방출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보존가치가 뛰어나 200 12월 습지보전법에 따라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2007년에는 생태의 우수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우리나라에서 5번째, 세계에서는 1,648번째로 국제습지조약에 따른 습지보호구역, 이른바 람사르(Ramsar)조약습지로 정식 등록된 곳이다.
군산 오름(해발 334.5m) 20분 정도만 산책하면 바다와 섬 그리고 구름이 만든 그림을 쉬이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정상에 오르자 서귀포시와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펼쳐지는 풍경은 오래도록 바라보아도 지루할 새가 없다. 태양이 구름의 움직임에 따라 마라도, 가파도, 송악산을 차례로 조명하고, 바람이 바다 위에 시시각각 다른 무늬를 새겨 놓기 때문이다. 내려다보는 것이 아닌 멀리 조망하기 좋은 높이가 바로 오름이다. 군산 오름은 처음 만나는 이도 홀딱 반할 만큼 오르는 재미와 높이의 매력이 충분하다. 오름의 생김새가 군막(軍幕)과 비슷하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며 고려 목종 7년인 1007년에 화산이 폭발하여 상서로운 산이 솟아났다고 하여 서산(瑞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제주도 남쪽 해안가의 산방산과 함께 남제주군의 대표적인 오름이라 한다.
중산간에는 제주만의 독특한 숲, 곶자왈이 있다. 이곳은 한마디로 용암이 굳은 자리에 형성된 숲이다. 단단한 바위 틈으로 생명력 강한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그 식물이 다시 토양이 되어 숲을 이룬 것이다. 바닥을 이루는 구멍이 숭숭 뚫린 바위 사이로 지하수가 흐르기 때문에 이 숲은 한 여름에는 시원하고 한 겨울에는 따뜻하다. 그 때문에 사시사철 푸른 곶자왈에는 지구 상에서 유일하게 열대 북방 한계 식물과 한대 남방 한계 식물이 공존한다.
도너리 오름(해발 440m) 인근에 위치하며 목장과 마을로 둘러싸인 무릉 곶자왈을 찾았다. 수백 종의 양치식물과 넝쿨식물, 키 큰 나무까지 모두 한데 어우러져 시간이 쌓아온 에너지를 뿜어낸다. 오랜 세월 제주도민에게 곶자왈은 농사를 지을 수 없어 버려진 땅이었다. 쓸모없어 살아남은 숲 곶자왈은 고맙게도 이제는 제주의 허파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생태 여행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레 곶자왈 탐방 코스도 마련되었다. 무릉 곶자왈은 제주 걷기 운동의 대표 주자인 올레길 4코스에 포함되어 많은 이들이 찾기 시작했으며, 화순 곶자왈에는 생태 탐방로가 설치되어 곶자왈의 신비를 보다 쉽게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중산간은 발로 구석구석 살피며 잘 알려지지 않은 자연의 매력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달리며 만나는 풍경도 이에 못지 않다. 그 중에서도 한라산의 정취를 담은 채 쭉 뻗어 있는 1112번 도로는 아름다운 가을철 드라이브 코슬 손꼽힌다. 차를 타고 달리다가 양옆으로 삼나무가 빽빽이 도열한 비자림로에 잠시 멈춰 선다. 그림자마저 초록일듯한 진한 숲의 기운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일까? 비자림로 초입에는 사려니 숲길이 있다. 편백나무, 졸참나무, 삼나무 등이 촘촘히 공기를 메운 숲을 지나 물찻 오름(해발 717.2m)을 거쳐 사려니 오름(해발 550m)에 이르는 15가량의 푸른 길이다. 가지마다 달랑거리는 보라색 열매의 개수를 세며 걷다 보니 어디서 컹컹소리가 들린다. 눈 앞까지 다가온 노루는 이곳에 찾아온 사람을 한번 바라보곤 다시 숲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