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타임머신에 올라타서 500년 전에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03.06~1564.02.18)가 이탈리아 로마 북서부에 소재한 교황국
바티간 시국의 로마교황청 내에 위치한 시스티나 대성당(Cappella Sistina, Sistine Chapel)에
《천장화(Frescoes in the Sistine Chapel, 1512 완성)》를
그리던 곳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 보았다.
오늘날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걸작이라고 일컬어지는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대성당의 《천장화》에는 미술
작품으로서의 예술적 희열과 완성도는 물론, 이와 더불어 인체해부학의 비밀 메시지가 숨겨져 있었다.
미켈란젤로는 지금 이 성당의 천장에 프레스코(Fresco)화
작업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1508년 5월 10일부터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명을 받고 작업에 착수한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역사책에
기록된 대로라면 앞으로 2년 후인 1512년 10월 31일에는 이 《천장화》가 완성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 미켈란젤로가 하고 있는 작업은 단순한 회화적인 작업이 아닌 무언가를 후대에게 알려주기
위한 메시지를 작성하는 듯한 모습이다. 나는 이상하리 만치 비밀스럽게 작업을 하고 있는 미켈란젤로의 모습을
훔쳐 보고 있다.
이런 대 작품을 만들면서 그는 그 흔한 조수 1명 두지 않고
혼자서 높이 20m, 길이 41.2m, 폭
13.2m의 시스티나 대성당 천장에 ‘천지창조’를 테마로
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이곳에 도착한 것이 1510년 9월 10일,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는
이미 완성단계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연히 이곳에서 만난 미켈란젤로의 친구라고 하는 도니(Agnolo
Doni)라는 젊은이의 말로도 미켈란젤로는 《천장화》 작업을 시작한지 8개월만인 작년(1509년) 1월에 이미 작업의 대부분을 완성했다고 했다.
시스티나 대성당의 《천장화》는 대들보로 9등분 되어 있는 성당
천장의 수평면을 이용하여 구약성경의 내용을 담은 9개의 장면(‘빛의
창조’, ‘해·달·초목의 창조’, ‘바다와 땅의
분리’, ‘아담의 창조’, ‘이브의 창조’, ‘원죄와 낙원 추방’, ‘노아의 번제’, ‘노아의 홍수’, ‘술취한 노아’)으로
표현되어 있었고, 3개의 장면들이 각각 1장의 주제로 구성되어
『천지창조』, 『인간의 타락』, 『노아 이야기』의 총 3장의 주제화면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또한 작업은 성당의 입구 쪽에서
구약성경의 내용 순서와는 반대로 ‘술취한 노아’부터 그리기
시작하여 제단 쪽에 이르러 ‘천지창조의 이야기’로 마무리를
하였다.
《천장화》의 대부분을 이미 완성시킨 미켈란젤로는 올해 초부터 《천장화》에 그려진 9개 그림의 주변을 메워나가고 있다고 한다.
구약성격에 나오는 예언자 7명(‘요나’, ‘예레미야’, ‘다니엘’, ‘에스겔’, ‘이사야’, ‘요엘’, ‘스가랴’)과 이방의 예언자인 무녀 5명(‘페르시아
무녀’, ‘에트리아 무녀’, ‘델포이 무녀’,
‘쿠마에 무녀’, ‘리비아 무녀’), 그리고 8개의 삼각부분에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선조들(‘이새’, ‘솔로몬’, ‘르호보암’, ‘아사’, ‘웃시야’, ‘히스가야’, ‘요시아’, ‘스룹바벨’)을 그려 넣는다고 한다.
또한, 성당 천장의 사각 모서리에는 이스라엘을 구한 성인(‘모세와 청동 뱀’, ‘하만의 징벌’, ‘유디트’, ‘다윗과 골리앗’)을 그려 넣고, 20개의
기둥 위에는 4인 1개조의 젊은 군상을 그려서 《천장화》를 완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주변을 메워나가는 작업도 이스라엘의 예언자와 이방의 예언자를 그려 넣은 상태여서 이미 1/3의 진척이 있는 듯 보인다.
무엇이 미켈란젤로를 저렇듯 열성적으로 작업에 몰두하게 하는 것인가? 그는
왜 최악의 조건에서 작업을 하면서 그 흔한 조수 1명도 두지 않고 혼자서 어려운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를 지켜보면서 이해할 수 없는 궁금증이 더
해가는 것을 나는 피할 수 없었다.
미켈란젤로가 하고 있는 《천장화》 작업은 말 그대로 건물의 천장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성당의 높은 천장에 그것도 일반 그림을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창세기에 나오는 성서 이야기를 묘사하는 작업이다. 더군다나 그림의 재료도 다루기가 까다롭기로 소문난 프레스코다. 이러한 최악의
창작 조건 속에서도 그가 혼자서 작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탈리아어로 스타레 프레스코(Stare fresco)가 ‘곤경에 빠지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을 정도로 프레스코는 힘든 작업이다. 프레스코화 전문 미술가들도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제작해야 한다는 작업을 도제(徒弟) 시절 이후 프레스코로 제작한 경험이
없던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겪으면서 《천장화》를 그리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지상 20m의 높이 위의 비계(飛階, 높은 곳에서 공사를 할 수 있도록 임시로
설치한 가설물) 위에서 머리를 뒤로 젖히고 몸을 활처럼 구부린 상태에서 지난 2년
동안 그림을 그리면서 건강이 악화되고 직업병까지 생긴 것 같아 보인다. 멀리서도 척추는 휘어지고, 관절염과 근육 경련, 얼굴에 떨어지는 안료로 인해 안과질환의 관찰되는 소견이다.
《천장화》가 완성되는 1512년 10월 31일까지는 아직도 2년이 더 남아(25개월)있는데, 미켈란젤로는 저런 몸으로 과연 작품을 완성할 수 있을까? 내가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이곳으로 시간여행을 온 사람이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그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서 그의 작업을 우선은 막았을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지금 깊은 신앙심으로 종교적 순례를 하고 있는 것인가? 최악의
조건에서 혼자 작업을 고집하면서 그는 후세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궁금증은 늦은
저녁시간 그의 작업을 훔쳐 보면서 풀렸다.
그는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며 예술적 투혼을 불사르고 있다. 35세의 청년 미켈란젤로는 이미 환갑을 넘어선 모습처럼 힘든 작업으로 인해 몸이 쇠하여 보였지만, 가끔씩 옆을 쳐다 볼 때 관찰되는 눈동자는 무섭게 번뜩였다.
그는 아마도 인류를
위한 미술교과서를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시스티나 대성당 천장 가득 인류가 활용할 미술교과서를 만들고
있는 듯했다.
후세에 수많은 예술가들이 천지창조를 주제로 한 이 《천장화》에서 표현된 다양한 인체들의 자세와
표정을 연구하고 그들의 작품에 응용하게 될 것이며, 이곳이 미술가에게는 회화의 성지순례 장소가 될 것이다.
벌써부터 유럽 각지, 아니 세계 각지에서 그의 그림을 보려고 달려오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귀를 멀게 할 정도의 환청이 들리는 듯하며, 시스티나 대성당을 찾은 방문객들이 웅장한 그의
그림 앞에서 넋을 잃고 서 있는 환각 증상도 일어난다.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는 예술가들에게 있어서 아이디어의
보고이며 미술교과서가 될 것이 확실하다. 인류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 받으면서 영원한 고전의 반열에 오를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천장화》를 통해 한 인간의 신앙심과 인내심, 끈기, 의지와 집념이 위대한 결실을 낳는다는 것을 후세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 같다. 그는
작업을 하는 동안 겪게 된 숱한 시련과 고난, 좌절을 인류 최대의 걸작을 남기겠다는 야망과 조각가인 자신이
화가보다 더 그림을 더 잘 그릴 수 있다는 경쟁심으로 이겨내고 있는 중이다. 열악한 주변 환경에도 불구하고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강한 의지력을 가진 미켈란젤로는 강한 목표 의식과 예술가로서의 자부심으로 불굴의 투지를 자극하여 인류 문명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길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초인적인 작업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육체와 정신의 고통을 완화시키는 천연 진통제의
효과를 확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을 완성한 후에 느끼는 성취감, 바로
이 천연 진통제에 그는 이미 중독되어 있었기에 새로운 성취감을 맛보기 위해서 고통의 작업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성당 한 모퉁이에서 미켈란젤로의 작업을 훔쳐 보다 깜박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그는 없었다. 아마도 지친 몸을 이끌고 잠시 쉬러 간 것 같다. 벌써 아침이 밝았는지 성당
창문으로 빛이 새어 들어온다. 눈부신 아침 햇살이 성당 창문을 통해 그가 그린 프레스코화 위로도 조명되고
있었다. 성당 창문이 건물의 중간 부분에 위치해 있어서 일까? 그가
그린 9등분 되어 있는 《천장화》 가운데 부분인 ‘아담의 창조’ 장면에 햇살이 깃들여지고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그곳을 보다 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가 혼자서 무슨 작업을 하였는지 비로서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담의
창조’ 장면에는 인간의 두개골의 횡단면이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만약 내 생각이 옳다면 미켈란젤로는 그의 작품 속에 그가 습득해 온 해부학적 이미지를 넣고 있었던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하나님이 자신의 손가락을 아담의 손가락을 향해 뻗는 ‘아담의
창조’ 장면에서 하나님과 주변의 천사들의 모습을 인간의 두개골의 횡단면과 닮도록 그려 넣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준 선물이 인류가 가지고 있는 지능이라는 것을 표현하고자 한 것일까?
나는 흥분하여 정신 없이 성당의 중앙으로 뛰어 나가 그가 그린 《천장화》의 다른 장면들도 확인하기
시작했다. 만약 미켈란젤로가 그의 작품 속에 해부학적 이미지를 비밀스럽게 넣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다른 장면에서도 그 흔적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아담의 창조’
바로 위에 있는 ‘이브의 창조’ 장면에서는 나무 줄기를
인간의 기관지처럼 묘사했고, 오른쪽에 있는 하나님의 보라색 의상은 측면에서 본 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쿠마에 무녀’에는 무녀 옆에 축 늘어진 푸른색의 주머니가 인간의 심장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주변의 붉은 색 테두리와 흰색 두루마리는 횡경막과 대동맥을 표현한 듯 보였다. 또한 ‘리비아 무녀’에는 어깨로 이어지는
팔의 뼈가 묘사되어 있었다. 성당 출입문 쪽에서 둔탁한 인기척이 들려온다. 아마도
미켈란젤로가 다시 작업을 하러 오고 있는 듯하다. 아쉽지만 성당의 한 모퉁이로 몸을 숨길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분명해 진 것은 미켈란젤로는 이 어려운 프레스코화 작업을 혼자 하면서 그가 정리한 해부학적
지식을 작품 속에 숨겨 넣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후세에게 필요한 미술교과서를 만듦과 동시에 인체 해부학의
열린 교과서도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증이
더 해 간다. 그가 성당의 육중한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린다.
만약 미켈란젤로가 《천장화》 작업을 수락하면서 교황 율리우스 2세에게
제시한 ‘자기 의지대로 《천장화》를 그릴 것이며, 그림이 완성될 때까지는
그 어느 누구도 그의 그림을 보아서는 안된다’는 2가지 조건이 없었다면
난 미켈란젤로에게 나의 궁금증을 직접 물어 보았을 것이다. 아무리 시간여행을 하고 있더라도 그 정도의 질문은
가능할 것이며, 그 질문으로 인해 르네상스 시대의 역사가 바뀔 일은 없으니까 말이다.
※ 시스티나 대성당(Cappella Sistina)
이탈리아 로마의 북서부에 소재한 교황국 바티칸 시국 로마교황청 내 위치한 시스티나 성당은 교황 식스투스 4세(Sixtus IV)의 지시에 따라, 건축가
조반니 데 도르티의 설계로 1473년 착공, 1481년에 완공되었다. 성당의 명칭은 교황 식스투스의 이름에서 유래해 시스티나 성당으로 불리우고 있지만 성당 자체보다는 인류 회화 역사상
최대 걸작인 천지창조를 주제로 한 미켈란젤로의 《천장화》와 《최후의 심판》으로 더 많이 알려진 곳이다. 건물
자체는 깊이 40.23m, 너비 13.41m, 높이 20.7m로 오히려 작은 부속 성당 정도이다.
천장은 궁륭(穹窿, 활이나 무지개 같이 한가운데가 높고
길게 굽은 형상으로 만든 천장이나 지붕)이 덮고 있고, 좌우에 모두 12개의 천창(天窓, 채광이나 환기를 위해 지붕에 낸 창)이 배열되어 있다.
평범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 의미가 깊은 성당이다. 이 성당의
크기는 구약 성경에서 말한 솔로몬 왕의 신전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곳은 외부의 총안이 일러주듯 원래는 군사적
피란을 염두에 두고 지어진 부속 성당이지만, 교황 선출식 같은 중요한 행사가 이곳에서 거행된다.
본당을 완성한 후 교황 식스투스 4세는 피렌체와 움브리아의 대표적
화가들을 불러 좌우 벽면에 《모세의 생애》와 《예수의 생애》 등 12점의 벽화를 제작하도록 했다.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를 중심으로 기를란다요(Benedetto Ghirlandajo, 1458~1497), 디코시모(Piero di
Cosimo, 1462~1521), 시뇨렐리(Luca Signorelli, 1450~1523), 페루지노(Pietro Perugino, 1450~1523), 핀투리키오(Pinturicchio,
1452~1513) 등 당대 최고의 화가들이 3년여에 걸쳐 제작한 이 그림들에는 르네상스 전성기를
향해 다가가고 있던 이탈리아 회화의 모든 특징들이 함축되어 있다.
※ 프레스코화(Fresco)
Fresco는 축축하게 젖어 있는 석고를 벽면에
바르고 수분이 있는 동안 채색하여 완성하는 회화 방식이다. 프레스코화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이는 석회석과 모래로 만든 마감 바탕재가 시간(대략 20~24시간)이 지나면 말라서 더 이상 안료를 흡수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가들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용적 범위를 정해서 석고를 바르고 그 석고가 굳기 전에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시간과의 전쟁을 벌이며 작업을 한다. 또한, 프레스코는
수정작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화가들에게는 어려운 작업이라고 한다.
시간적인 여유도 없고 수정작업도 불가능한
프레스코화 작업에 속도를 빠르게 하려고 허리띠에 물감 통을 매고 양손에 붓을 쥔 채 묘기를 부리면서 작업을 하는 화가들도 많다. 그럴 만큼 프레스코 작업에는 미술적인 기량 외에 강인한 체력도 요구된다. 숱한
화가들이 프레스코 작업을 하던 중 체력의 부족으로 인해 곤욕을 치른다고 한다. 심한 경우 몸을 혹사한 나머지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난 화가들도 있다. 프레스코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충분한 사전 준비와 정확한 타이밍,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