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화가이자 시인이며 조각가, 건축가인 미켈란젤로(Michelangelo Lorenzo Buonarroti, 1475.03.06~1564.02.18)가 살았던
1500년대를 역사학자들은 ‘근대의 시작’이라고 한다.
그가 살았던 1500년경부터 ‘르네상스의
전성기’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유럽 역사의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던
‘르네상스(Renaissance, 14~16세기)’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적인 이상으로 되돌아가자는 뜻으로 ‘재생(또는 부활)’의 의미였다.
미켈란젤로가 살았던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인간이 보다 자유로운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인데, 이는 독일의 인쇄술 창시자이며 근대 활판인쇄술의 발명자인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1397경~1468.02.03)가 1450년경에
인쇄공장을 만들어 인쇄술을 발전시킨 결과라 할 수 있다.
인쇄술의 발달은 사람들의 생각을 빠르게 전달하며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준 것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교회나 성직자를 통한 성격 해석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공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전통적인 종교 연합이 무너지고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커졌으며, 르네상스와 과학혁명, 종교개혁 등이 이루어져 현대의 지식기반의 기초를 이룰 수 있었다.
예를 들면, 폴란드의 수도사이자 천문학자였던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02.19~1543.05.24)는 저서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 (전4권, 1525~1530년 집필된 것으로
추측)에서 당시로서는 매우 충격적인 사실인 지동설(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을 발표했으며, 이탈리아의 탐험가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08.26~1506.05.21)의 항해는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라는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게 되었다. 유럽과
아메리카, 인도, 아시아,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새로운 무역 항로의 탄생으로 유럽 왕조뿐만 아니라 수백만명의 유럽인들의 생활 방식이 바뀌게 되었다.
또한, 자연과학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가능해진 르네상스 시대에
자연과학의 발달이 어느 시대보다 빠르고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는데, 의학부분에서는 벨기에의 해부학자이자 근대해부학의
창시자인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 1514.12.31~1564.10.15)가 처음으로 인체를
정확하게 묘사하였으며, 저서 《인체해부에 대하여(De humani
corporis fabrica libri septem, 1954년)》에서 갈레누스(Claudius Galenus, 131~201)의 인체해부에 관한 학설의 오류를 하나하나 지적하여 정정하여 의학근대화의
새로운 기점을 열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을 완벽한 완성에 이르게 했다고 평가 받고 있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천재적인 미술가·과학자·기술자이며
사상가이기도 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04.15~1519.05.02) 역시
해부학·동물학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 피의 순환에 관한 이론을 세웠고, 인체를 상세하게 해부학적으로 연구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르네상스 시대에 미켈란젤로 역시 르네상스 회화, 조각, 건축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는데, 그의 작품은 르네상스의 고전 양식부터
초기 바로크 시대의 양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추이를 보인다. 로마 바티칸 궁전에 있는 산 피에트로 대성당(San Pietro Basilica)의 《피에타(Pieta, 1499)》, 시스티나 대성당(Cappella Sistina)의 《천장화(Frescoes in the Sistine Chapel, 1512)》와 《최후의 심판(Last
Judgment, 1541)》, 현재는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으로 옮겨졌지만 피렌체 시청 문 앞에 《다비드(David, 1504)》
등이 대표작과 세명의 교황(레오 10세, 클레멘스 7세, 레오 11세)과 피렌체의 통지자(로렌초)를 배출하여 13~17세기까지 피렌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가졌던 ‘메디치가(Medici家)’ 묘묘(廟墓)의 제작물 중의 《저녁》과 《낮》의
두 남성상 조각과 ‘노트르담교회’라고도 일컫는 벨기에의 ‘성모마리아교회(Our Lady's Church)’에 있는 《성모자상(Madonna and Child)》 등의 많은 미완성 걸작품을 남겼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문화와 과학의 부흥이라는 배경 속에 알렉산더 대왕(Alexandros
the Great, BC 356~BC 323.6) 시대 이후로 1,700여 년 동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던 해부학 실습의 재개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화가나 조각가의 작업실에서 외과용 메스를 발견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질 정도였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뛰어나, 양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대조각을 연구하였던 미켈란젤로는 로렌초(Lorenzo il Magnifico, 1449∼1492)에게 인정받아, 그의 집에서 체류하게 되면서부터 인문 학자들과도 접촉, 고전문학이나 신구약 성서를 탐독함과 동시에, 조각을 위한 인체 해부에도 전념하게 되었다고 한다.
미켈란젤로는 의학을 접하게 되면서 당시의
예술적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는데, 그의 작품 곳곳에 그가 습득한 해부학적 지식이 숨겨져 있는
것이 밝혀졌다.
역사학자들에 의해 거의 무시되다 시피 한 그의 해부학에 대한 폭넓은 지식이 예술 작품 속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숨겨져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오늘날까지 비밀스럽게 전해졌는지 적어보고자 한다.
역사학자들에 의해 거의 무시되다 시피 한 그의 해부학에 대한 폭넓은 지식이 예술 작품 속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숨겨져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오늘날까지 비밀스럽게 전해졌는지 적어보고자 한다.
미켈란젤로의 예술 작품은 교황에 봉사를
끊임 없이 요구당하면서도 자유와 정의를 추구하며 싸운 그의 괴로운 심경과 사회의 부정과 대결한 분개와 우울, 그리고
신앙의 미적 형상화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그것은 초인적인 억센 제작력에 의해 달성된 것이기에 더욱 높이 평가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그것은 초인적인 억센 제작력에 의해 달성된 것이기에 더욱 높이 평가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갈레누스(Claudius Galenus, 131~201)
고대 그리스의 의학자. 생리학에 관한 실험과 여러 동물의 해부를 통하여 인체 구조에 관한 결론을 내리고, 의학의
과학적 기초를 닦았다. 저서인 《갈레누스 전집》은 히포크라테스(Hippokrates)의
저서와 함께 의학계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히포크라테스가 모든 경험을 중시한 의학론임에 반하여, 갈레누스의 의학체계는 모두 목적론에서 출발한 것이었고, 그 목적에 부합하는
자연현상으로써 의학설의 근본을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