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September 18, 2006

이미륵 - 압록강은 흐른다......남북합작영화로...

어렸을 적 아버지의 책꽂이에는 이미륵의 책이 두권 꽂혀 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 중 옛날 이야기를 모아놓은 것 같은 책이 있었는데 그 책의 제목은 〈이야기〉였다. 〈이야기〉는 읽었지만 〈압록강은 흐른다〉는 보지 않았다.
 
〈압록강은 흐른다〉를 보지 않은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제목이 너무 촌스러웠다. 지은이 이름까지 촌스럽기 짝이 없었다고 그 당시엔 생각을 했다. 이미륵이라니….
바로 이 작품이 남북합작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했었다. '압록강은 흐른다'가 남과 북의 합작영화로 만들어진다고….
지금까지 아무 소식이 없으니 물 건너간 이야기겠지만 사실 〈압록강은 흐른다〉를 영화로 만들면 실패하기 딱 좋을 것이다. 어디다 임팩트를 주어 그 영화를 만들겠는가?

이미륵 이야기를 꺼낸 것은 우연히 전혜린의 수필 〈이미륵씨의 무덤을 찾아서〉를 읽었기 때문이다.
 
책의 오자인지 전혜린의 착오인지 모르겠지만 이 책에는 이미륵이 독일에 온 것이 1910년이라고 적고 있다.
 
이미륵이 독일에 간 것은 1920년이다. 1919년 이미륵은 삼일운동에 참여했고, 그 때문에 일경을 피해 상해로 건너 갔다가 그곳에서 독일로 유학을 떠난 것이다.
 
1921년의 한국 유학생들 사진.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 이른 시기에 독일에 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들 있었는지? 저들은 대개 부유한 집안의 자제들이었다.
전혜린은 이미륵이 나치에 의해 총살된 뮌헨대학 학장 후버 씨(쿠르트 후버. 그 유명한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에 등장하는 바로 그 사람)와 절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동양인으로, 그리고 독일과 동맹을 맺은 일본에 저항한 지식인으로 그는 어떻게 독일에서 지냈던 것일까?
 
의문은 걷잡을 수 없이 떠오른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때 그는 손기정을 보았을까?
 
이미륵은 화가 배운성과 아는 사이였고, 배운성은 베를린 올림픽에 동아일보 특파원으로 있었다. 배운성은 한국전쟁 때 월북했다. 1963년 숙청되어 1978년 죽을 때까지 비참한 생활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유럽으로 유학간 한국인 화가 1호였으며, 각종 대회에서 수상을 한 바 있는 국제적인 화가였다.
......
 
(손기정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마라톤 우승자가 되어 전 세계를 놀라게 했을 당시 서울 양정학교에 다니는 고등학생이었다. 그저 달리기만 하는 그런 학생이었다. 그날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을 한 후 베를린 한인교포들의 초대를 받았다. 대학교수인 초청자(아마도 이미륵씨인 것으로 추정)와 열 두어 명의 한인들이 저녁식사에 모였다. 저녁을 준비한 자리에서 이 대학교수는 손 선수를 소개하고는 오늘 손 선수의 마라톤 골인 현장을 보면서 두 번 울었다고 했다.
 
첫 번째는 조선의 청년이 전 세계를 제패한 장한 일을 세운 일에 대해 울었고, 두 번째는 그의 가슴에 태극기가 아닌 일장기가 붙어 있는 것이 분해 울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장롱에 고이 간직해 있던 태극기를 꺼내 들고 와서손기정군, 이것이 태극기야. 바로 이 태극기를 달고 자네는 뛰었어야 해라고 말했다. 모인 한인들은 한꺼번에 울음을 터뜨렸다. 손기정은 그때까지 태극기를 몰랐다고 한다. 그리고 그 태극기를 보고 또 보면서 한없이 울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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