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September 11, 2006

이미륵 - 압록강은 흐른다

아마도 이미륵(Li Mirok)은 미국에서 강용흘이 쓴 자서전적 소설 '초당'을 모델로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더듬어 "압록강은 흐른다 (Der Yalu fliesst)"를 쓴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1946년에 독일 뮌헨의 피퍼(Piper)에서 출판되었고, 1954년에 런던의 하빌 프레스(Harvill Press)에서 영어로 번역하여 "The Yalu flows"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2년 후인 1956년에는 앤 아버(Ann Arbor)가 미시건 대학 출판부에서 미국판을 출판했다. 불어판은 이자벨 부동(Isabelle Boudon) 번역으로 1994년에 아를르 소재 필립 픽키에 (Philippe Picquier) 출판사가 "한국에서의 어린 시절"이란 제목으로 정인복의 삽화를 곁들여 출판했다.
 
강용흘이 역동적인데 비해, 이미륵의 서술은 안정적이고, 섬세하고, 장면의 묘사가 안개에 가린 듯 희미하고 시적이다. 이는 그가 이 작품을 40대 중반의 나이에 쓴 탓도 있겠지만, 그의 병약한 몸과 예민한 감수성에도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운명에 체념적으로 순응했다. 그는 대단한 문학적 소질로 그의 어린 시절을 대단히 아름답고 세련된 독일어로 묘사했다고 한다.
 
이미륵은 최초로 독일어로 작품을 쓴 한국인이다. 질 보-베르티에에 다르면, "압록강은 흐른다"의 초판은 출판되자마자 독일 문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곧 매진 되었다고 한다. 최상의 독일 문학 작품 중의 하나로 인정되어, 이 책의 일부가 독일 고등 학생용 명작 선집에 올라갔다고 한다. 이 책은 1960년에 전혜린이 한국어로 번역했고, 여러 나라에서 영어로 번역되었다.
 
이미륵은 그의 자서전적 소설에서 동양 문화와 서양 문화의 충돌 문제를 다루었다. 그의 넓은 교양과 깊은 지식에도 불구하고 교훈적이기를 배제한 간결한 문체로 썼다. 이 작품은 40대 중반에 썼으므로, 기억이 희미하고 불분명하며, 부정확하다. 또한 여성적이고 낭만적인 요소도 적지 않다.
 
내용에서는, 옛날 이야기 두 편의 번역, 20세기 초의 한국의 교육 제도, 간단하면서도 고유한 한글의 독창성과 우수성, 어린이 놀이, 유교와 불교 전통, 무속, 한국의 전통과 서양의 전통의 만남, 자연 법칙, 저울, 유리관, 시계, 기차, 증기 기선, 램프, 석유, 공자, 맹자, 한국 철학자 이율곡, 일본에 의한 한국의 병합, 등에 관해 묘사했다.
 
그는 서양인과 동양인을 비교하기도 했다. 비록 일본의 지배 밑에 들어가긴 했으나 한국인은 찬란한 문화를 가진 민족임을 강조했다. 앞의 강용흘의 책에서와 같이, 이미륵도 세계 최초의 금속 인쇄술, ‘잠수함(거북선)’, 도자기, 종이, 등 많은 것을 한국인의 선조들이 발명했음을 부각시켰다.
 
그도 일본인의 잔학상을 고발했다. 다른 친구들과 함께 1919 3월 독립운동에 가담했다가 일본 경찰의 추적을 받아,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피신했다. 기차로 묵덴, 천진, 남경을 거쳐 상해에 도착했다. 거기서 임시정부를 찾아가 유학 담당자를 만나 유학의 뜻을 이야기 했다. 1919년 가을, 그는 상해에서 프랑스에 유학하기 위해 여권 발급을 6개월 간이나 학수고대하고 있던 유학생 4명을 만났다. 이들 5명은 1920년 봄에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중국 여권을 받았다. 프랑스 여객선은 저렴한 표를 가진 동양 유학생을 위해 배의 앞 부분 화물창에 학생용 선실을 만들어 이들을 수용했다. 이 여객선에는 학생 100여 명이 탔는데, 한국 학생들은 함께 여행할 수 있도록 한데 모였다. 한 한국 학생이 덴마크어를 할 줄 알았다. 한국 학생이 중국 학생과 의사 소통을 하려면 붓으로 한문을 써서 했다.
 
이들이 마르세이유에 도착하자 프랑스 중국인 유학생회 회장이 환영 나왔다. 한국 학생들은 중국 학생들 사이에 섞였다. 중국인 회장은 긴 환영사를 하면서, 동양 학생들을 받아들이는 국가의 전통과 관습을 지키도록 당부하고,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의 후예로서 부끄럽지 않도록 처신하라고 타일렀다.
 
연설과 많은 충고가 나자 학생들은 한 사람씩 사무실에 불려갔다. 거기서 여권, 졸업장, 지닌 돈을 보여 주고 체류증과 프랑스 대학에 관한 안내 책자와 귀중한 서류들을 받았다.
 
한국 학생 5명 중, 독일로 가는 학생은 이미륵 뿐이었고, 둘은 프랑스, 둘은 영국에 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가 독일에 도착한 지 얼마 안되는 1920년 가을에 그는 고국으로부터 첫 소식을 받았다. 그것으로 그의 소설은 이렇게 끝난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자, 흰 눈송이가 벽을 따라 흩날렸다. 나는 친숙한 흰 눈을 보고 행복했다. 내 고향 마을과 송림만에 내리던 눈과 같은 눈이었다. 그날 아침 나는 머나먼 나의 고국으로부터 첫소식을 받았다. 누나가 나에게, 어머니께서 며칠 앓으신 후, 금년 가을에 세상을 떠나셨다고 썼다."